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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돔의 피임률은 80%다

   “웬 시계예요?”

   “이제 곧 네 생일이잖아.”

   “….6개월 남았는데요?”

   “응, 정확히 6개월 생일 기념.”

 

   마츠카와의 표정은 퍽 무심해 보인다. 척봐도 값비싼 포장에 값비싼 시계임에도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냥, 보는 눈 많은 레스토랑에서 비싼 시계를 선물하고 있으니 내심 자신의 재력을 자랑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히나타는 에피타이저로 나온 빵을 접시 위에 내려놓고 갑작스러운 선물을 훑어보았다. 당황했지만 이내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시계를 훑어보았다. 로즈골드 바탕에 노란빛이 감도는 보석이 색색이 박혀 있었다. 토파즈라고, 저와 닮아 샀다고 했다. 이 시계를 만지려면 손을 깨끗이 닦고 만져야 할 것 같았다. 지문 하나 콕 묻으면 조명에 비춰 눈부신 빛이 바래버릴 것 같다. 히나타는 바로 시계를 꺼내는 대신 다시 곽을 닫고 마츠카와를 보았다.

 

   “왜? 마음에 안 들어?”

   “아니, 마음에 들어요. 항상 비싼 선물 사주고 고마워요. 그리고… 그보다는 먼저 할 말이 있어서요.”

   “할 말? 뭔데?”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히나타는 그것에서 시선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진지한 이야기인지 히나타는 심호흡까지 한다. 표정은 언뜻 부끄러워 보였다.

 

   “네, 저 임신했다구요.”

 

   마츠카와의 두 눈이 부릅떠진다. 입을 떡하니 벌리더니 말없이 히나타를 쳐다본다. 예상했던 수백 가지의 반응 중 한 가지이지만 정말 실제로 볼 줄은 몰랐다.

 

   마츠카와는 보기완 다르게 낯가리고(표정이 무섭게 굳어진다.) 순한 타입(츤데레다.)이였지만 밖에서는 자기관리라는 명목하에 냉철하고 다소 무서운 이미지였다. 그것이 한 번에 깨졌으니 예상보다 꽤나 충격인가 보다.

 

   “아, 당연히 맛층이 아빠예요.”

 

   일반적인 커플이었다면 좋아하거나 지울 궁리를 하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따지고 보면 둘은 애인 관계보단 가볍고 친구보다 깊은 섹스파트너 관계였으니 아이의 존재란 썩 달갑진 않았다.

 

   마츠카와에겐 아이는 생각지도, 아니, 좋아하질 않았다. 더럽고 시끄럽고 손타고, 아빠가 될 자신도 없고 누군가의 남편이 될 인물도 아니니 일찌감치 결혼 같은 것은 포기하고서 성욕을 해결할 상대만을 찾았다. 돌고 돌아 제일 오랫동안 배를 맞춰온 인물이 히나타. 돈은 썩어 넘쳐 돈으로 샤워를 해도 될 지경이니 섹스 파트너에겐 구설수를 만들지 말라는 입막음용으로 선물 정도야 흔하게 주었지만 사실 오히려 돈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하여 히나타처럼 구설수 관련하여 안심이 되는 인물은 또 없었다. 돈 욕심도 없고 성격도 맞겠다, 조그만 녀석이 어찌나 혈기왕성한지, 정말 히나타의 목적은 자신과의 섹스뿐이라 더 오래 지속될 관계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으음… 책임지라는 말은 안 할게요. 맛층은 아기 싫어하는 거 아니까. 아, 아이 가지고 귀찮게 굴지도 않을게요. 원한다면 서약서 같은 거 써도 돼요. 성도 제 성 따라서 할 거니까…. 맛층, 나 믿죠? 귀찮게 굴지 않으리라는 거.”

   “…네가 임신했다고?”

   “아, 아직 생각이 거기 밖에 안 갔어요? 기다려 드릴게요.”

 

   이만하면 진정됐겠거니 했는데 충격이 컸는지 마츠카와는 히나타=임신하다. 라는 프로세스를 머릿속에 우겨넣기 힘들어 보였다.

 

   그 사이 음식이 나왔다. 코스요리라 본요리 전에 바닷가재 수프가 먼저 나왔다. 입덧이 거의 없어서 다행이었다. 바다향이 물신 나는 수프를 입에 떠다 넣다보니 마츠카와가 천천히 등을 의자에 기대었다. 곱게 세우던 등도 무너지고 어깨도 축 늘어진다. 어차피 책임지라는 말은 하지 않을 텐데 뭐 저리 충격인지 모르겠다.

 

   “18살 미만은 싫어하는 거 알아요. 저도 책임지라고 할 생각 없고, 귀찮게 돈 달라고 할 생각도 없어요. 맛층만큼은 아니지만 아주 우리 집도 못사는 게 아닌 걸. 저도 모아놓은 돈도 있고.”

 

   제 말 듣고 있어요? 마츠카와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니올시다. 그릇 바닥이 보인다. 고급 레스토랑의 수프는 과연 맛있다. 수프를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은 히나타는 스푼을 내려놓고 턱을 괴었다. 마츠카와의 저 떡 벌려진 입이 도저히 다물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히나타는 마츠카와의 턱을 꾹 눌러 닫아주었다.

 

   “체면 그렇게 챙기는 사람이 보는 눈도 많은데 입을 그렇게 벌리면 안 되죠.”

   “.....”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로 히나타는 몸을 일으켜 마츠카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보는 눈이 많아졌는데도 마츠카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마지막 키스.”

   “뭐, 뭐라고?”

   “안녕, 마츠카와.”

   “뭐?!”

   “걱정마요, 안 찾을 테니까. 아아, 그래도 마지막이 너무 허무하네요. 반 년이나 서로 알몸 봐온 사이인데.”

   “무슨 소리야, 갑자기?! 누구 맘대로…!”

   “떠나고 싶으면 떠나라.”

 

   계약 상의 내용이었다. 서로 붙잡지 말고 헤어지고 싶을 때 깔끔히 떨어지라는 조항이었다. 마츠카와는 상대가 누구든 붙잡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 상대는 항상 마츠카와를 붙잡았기에, 자신을 위해 넣은 조항.

 

   히나타는 가볍게 손을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 선물은 잘 가질게요. 토파즈가 박힌 시계를 가방에 넣고 히나타는 미련도 없이 돌아섰다.

 

   마츠카와는 그 자리에서 못 박힌 듯, 일어나지도 못했다.

 

   잡아야 하나? 생각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계약서를 작성한 사람은 다름 아닌 본인이었다. 자신이야말로 히나타를 잡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코앞의 수프가 식는다.

 

 

***

   “오, 네 애기 아빠 TV에 나온다.”

 

   스가와라가 리모컨을 쥐고 볼륨을 올렸다. 마츠카와 물산의 상무인 마츠카와 잇세이가 물산의 경영권을 완전히 인수하기 위해 회장 대리직을 맡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남의 회사 사정 따위 뭐 저리 중요한가 싶지만 여러 가지 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내로라하는 기업의 일이고 매스컴은 이런 이야기들을 좋아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가 싶다.

 

   히나타는 툴툴 거리며 스가와라 손에 들린 리모컨을 뺏었다.

 

   “왜 재미없게 뉴스야. 다른 거 보자.”

   “왜는 무슨. 애기 아빤데. 어차피 못 만날 거 TV로도 보여줘.”

   “무슨… 쓸데없이. 다른 거 보자.”

 

   채널을 돌려보았다. 뉴스, 뉴스, 아동 프로그램, 요리 프로그램. 재미없다. 차라리 그냥 애니메이션 시간이라도 죽이고 있으련만. 히나타는 TV를 꺼 버리고 코타츠 속으로 몸을 우겨넣었다. 몸이 따끈따끈하니 눈이 천천히 감긴다. 반대편엔 스가와라도 같이 누워 책을 폈다.

 

   “스가 형.”

   “응?”

   “애 낳는 거 많이 아파? 형 병원에서 일하니까 아이 낳는 사람 많이 볼 것 아냐.”

   “으음… 난 재활 쪽이라 그쪽하곤 마주치질 않네? 그리고 뭐가 걱정이야. 넌 남자라서 제왕절개면서.”

 

   7개월이 넘었다. 진짜 임산부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판판하던 배는 이제 뭐로 봐도 임산부의 그것이었다.

 

   남자라서 제왕절개가 이미 예약되어 있다지만 히나타는 분명 진통이 빨리 올 것이라며 이유 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의사에게 빨리 나오리라는 것을 알 수 없냐고 수차례 물어보았지만 예정일이 다가오니 불안해지는 것뿐이라며, 모든 산모의 공통적인 특징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히나타를 다독였더랬다.

 

   그리 효과는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진통 까짓 얼마 안 가 수술을 할 것이라며 철썩 믿어왔지만 스가와라의 집은 미야기 시골 구석이라 택시도 잘 다니지 않는 곳이다. 구급차를 불러도 오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는 시골. 뒤에는 산이, 밤에는 멧돼지 출몰로 위험한 시골. 걱정만 한층 짙어지기 딱 좋은 위치이다. 히나타는 진통으로 몸이 반으로 갈라질 듯이 아플 것이라며 난리를 치다가 인터넷에서 허벅지를 꼬집는 것보다 한 3820561배 아파요^^ 라는 인터넷 글에 허벅지를 세게 꼬집어 보다가 스가와라의 욕과 함께 멍만 얻었다.

 

   미련한 사촌동생 같으니. 걱정이 산을 타고 올라갈 지경이다. 스가와라는 제왕절개의 부작용과 더불어 소방서와 집까지의 거리를 알아보는 히나타의 핸드폰을 압수해버렸다.

 

   “태교 그렇게 열심히 하더니 도루묵 만들 참이야? 네가 불안해하면 태아도 불안해한다고.”

   “하지만…”

   “내가 도와준다고 했잖아. 아기 낳고 자리 잡을 때까지.”

 

   히나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껏 스가와라만큼 믿음직스러운 사람은 없었다.

 

   부모님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보수적인 사람들이었고 혼전임신을 알게 되면 선물로 고혈압을 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몇 번 전화기를 들어보았지만 잘 지낸다는 안부인사 외에는 입을 떼지 못했다.

 

   어영부영 7개월에 도달하였다. 이제는 아기가 말을 하게 되면 그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다는 것을 저 대신 말해줄 것이라고 책임전가를 해버렸다.

 

   “애기 아빠라도 있어야 말하기 편할 텐데.”

   “뭐어… 그 사람은 아기 같은 거 싫다고 했구. 그리고 우리 아빠는 결혼시키려 할 걸? 맛층은 결혼도 싫다고 했단 말야.”

   “참 자유로운 영혼이네. 그런 부잣집은 후계 문제 같은 걸로 결혼은 반드시 하는 거 아니 였어? 너무 드라마인가?”

   “맛층은 이미 위에 형이 둘이나 있대. 그런 문제도 귀찮아하고. 회사 하나만 굴려도 먹고 살기 충분하다고 그 이상은 욕심은 안 가진대.”

   “뭐, 그 회사 하나만 가져도 돈은 차고 넘칠 테지…”

 

   부럽다, 부러워. 스가와라는 파 하나를 사도 유기농 금가루 파를 살 것이라는 의미 없는 농담을 던졌다.

 

   날이 참 한가롭다. 코타츠의 온도를 높이고 바람 소리를 감상했다. 안에서 배를 퉁퉁 친다. 낮에는 반응이 없는 녀석인데 웬일로 깨어있나 보다. 배 위에 손을 둘렀다.

 

   불안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안심되는 것이 없었다.

 

   혼자서 진통을 겪는 것 외에도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불안감은 의외로 컸다. 영원히 스가와라에게 신세를 질 수는 없으니 집을 따로 구해야 하고, 이것저것 할 일이 많다.

 

   확실히 혼자서만 하려니 막막하다. 몸이 무거워 당장 집을 구하러 다니는 것도 할 수가 없다. 밖은 눈이 소복하게 쌓여 감히 나다니지 말라는 스가와라의 명령으로 인해서 일주일 동안 히나타는 바깥 공기 한 줌을 못 쐤다.

   

   마츠카와가, 돈 없어도 되니, 좀 도와주면 싶은데, 이룰 수 없는 상상은 이내 지웠다.

 

***

   오키나와까지 갔건만 정답은 미야기였단다. 참나. 그러고 보니 도쿄보다 좀 더 위쪽이 고향이라고 한 것을, 히나타의 위치를 파악할 때야 떠올렸다.

 

   마츠카와는 뜨거워진 이마를 쓸었다. 설마하니 그 쪼끄만한 녀석 하나 찾질 못해 9개월이나 시간을 낭비할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개인적인 이야기라도 좀 더 해두는 것인데. 멧돼지가 자주 나오는 시골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만으로도 일본열도를 뒤지고 있었다. 세상에 멧돼지가 나오는 시골이 얼마나 많던지 그 망할 놈의 멧돼지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거기다 ‘히나타’라는 성이 좀 흔한가. 한자가 독특한 것도 아니니 그야말로 삽질이란 삽질은 골라서 하다가 드디어 진짜 ‘히나타 쇼요’를 찾고야 말았다.

 

   단서 하나를 잡으니 금방이었다. 본가는 당연히 멧돼지가 나오는 다른 곳이지만 사람 찾는 것이 특기인 심부름 센터 직원이 알아보니 본가 쪽으로는 얼굴도 비치지 않고 본가에서 세 시간 거리의 사촌형의 집에서 얹혀살고 있다고 했다. 역시나 이쪽도 밤에는 멧돼지 출몰로 극성이니 밤에는 방문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다. 미친.

 

   히나타와 동일성도 아닌 스가와란지 스가바라인지, 그 덕에 히나타를 찾는 데에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하였다. 집 앞에 선 마츠카와는 스가와라의 명패를 확인한 뒤 초인종을 꾹 눌렀다.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어 다시 한 번 눌렀고, 여전히 아무도 내다보지 않자 마츠카와는 다시 한 번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얏?!”

 

   안에선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당황한 마츠카와지만 곧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히나타임을 깨닫고서 초인종 대신 노크를 하며 답했다.

 

   “나야, 마츠카와 잇세이.”

   “누구라고?!”

   “맛층! 너랑…”

 

   섹스 파트너라곤 말하기 싫고 그렇다고 네 애기 아빠. 라고 하기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질 않았다. 고민하던 사이 드디어 문이 열렸다. 따뜻한 공기가 훅 느껴져 잠시 눈을 길게 감았다 떴다.

 

   드디어 눈앞에, 히나타가. 배가 나온 히나타가, 아니, 볼 자신이 없어 고개를 들어 히나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맛층. 무슨 일이에요?”

   “어…. 그러니까…”

 

   조금 더 나은 반응을 원했다. 옆집 친구가 놀러온 지금 같은 반응 말고, 좀 더 극적인.

 

   맛층, 여긴 어쩐 일이에요? 네가 보고 싶어서. 너무 당황스러워요, 하지만 저도 보고 싶었어요. 오는 내내 상상했던 시뮬레이션이 한 번에 산산조각 났다.

 

   생각해보니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히나타도 당연히 자신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가. 마츠카와는 머리를 쓸었다.

 

   “여긴 어떻게 알았어요?”

   “사람 써서 찾았어.”

   “지금 나 스토커질 한 거예요?!”

 

   그래, 확실히 이렇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스토킹이 아니라 널 보고 싶어서, 한 번만 이야기하고 싶어서 네 허락 없이 사람들을 써서 네 집주소를 알아내서 갑자기 찾아오는… 그래, 스토커가 되었다.

 

   “미안. 너 보고 싶어서.”

   “아니, 뭐 어찌됐건… 무슨 일이에요? 용건만 말해줄래요? 제가 지금 바빠서요.”

   “언제 시간 돼? 따로 만나서 길게 이야기하고 싶어.”

   “글쎄, 지금은 안 될 것 같은데. 한 3개월 뒤?”

 

   마츠카와는 입을 다물었다. 히나타의 입장에선 9개월 동안 나 몰라라 하다가 갑작스레 스토커질로 찾아온 전 섹스 파트너인데 달가울 리가 없었다. 아이에 관해서도 히나타는, 부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본인을 위해서라도 마츠카와와 연관성을 짓고 싶어 하진 않은 것 같았다.

 

   “정말 3개월 뒤에 다시 찾아 와야 해?”

   “제가 지금 나가봐야해서 그래요. 바쁘…”

   “왜… 왜 그래?!”

 

   히나타의 허리가 90도로 픽 꺾였다. 두 눈이 터질 것처럼 부릅뜬 마츠카와가 제 심장이 떨어지는 것처럼 놀라하며 히나타를 부축했다.

 

   “어디 아픈 거야?!”

   “호들갑 떨지 말고 차나 준비해주세요. 차 가져왔죠?”

   “병원 가야하는 거야? 어디가 아픈 건데?!”

   “이틀 뒤부터 예정일이긴 하지만 놀랄 것도 없죠, 뭐…”

 

   허겁지겁 움직이던 마츠카와의 발이 일순 멈췄다. 뭐뭐뭐뭐라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마츠카와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그저 히나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온 것이지, 이런 것을 보는 것을 목격하고 싶진 않았다. 심지어 히나타에게서 나오는 정체불명의 물이 자신의 구두를 적시는 꼴은.

 

   “너 오줌 싼다?!”

   “양수잖아 멍청아! 차나 대기시켜!!!”

 

   히나타는 몸에 비해 커다랗게 변한 배를 붙잡고 문간에 몸을 기댔다. 연습한 대로 심호흡을 하고 바로 마츠카와가 가져온 차에 몸을 맡겼다.

 

   양수가 터져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아침부터 이미 배꼽 근처가 당기기 시작했기 때문에 아주 놀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놀란 점은 예상치도 못한 인물이 사촌형의 집을 어떻게 알고 집 앞까지 찾아왔다는 점.

 

   “길 따라 쭉 직진하다가 3갈래 길에서 왼쪽 길로 15분 정도 가면 병원 하나 보여요. 거기까지 가주세요.”

   “으, 응. 지금은 괜찮은 거고?”

   “아직 참을만한 정도에요. 그런데 여기 왜 왔어요?”

   “…네가 보고 싶어서.”

   “뭐? 거짓말 하지 마시고 바로 말하세요. 혹시 얘가 목적인 건 아니죠? 아아… 스가 형 말대로 아기 포기각서에 지장부터 찍어둬야 했는데… 저 순순히 애 넘겨줄 생각 없거든요?!”

   “애 때문이 아니야. 관심도 없고…. 내 관심은 오직 너야.”

   “…갑자기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뜬금없이… 우리 섹스하고 다닐 때도 질척이지 않아서 내가 좋다고 했으면서, 반대로 맛층이 질척이고 있네요. 우리가 섹스하기 전의 그 계약서는 이제 무시하는 거예요?”

   “…태웠어.”

   “참 쉽네요.”

 

   싸늘한 히나타의 말이 비수로 꽂힌다.

 

   핸들을 꽉 쥐었다. 히나타를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 단순했다. 그저 만나고 싶었다. 다시 얼굴을 보고 몇 개월이 지나도록 침착하지 않은 가슴을 쓸어 넣으며 그것들을 정의내리기 위해 히나타를 찾아왔었다.

 

   마츠카와가 내린 결론은,

 

   “내가 너무 늦게 알아 차렸어.”

   “후우… 뭘요.”

   “내가 널….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아한다는 걸.”

 

   다시 진통이 왔는지 히나타는 심호흡을 크게 한다.

 

   “우리 떨어져 지낸지 1년이 다 되가는데 너무 늦는 거 아니에요?”

   “널 찾느라.”

   병원 정문을 통과한 마츠카와의 차는 곧바로 응급실 쪽으로 꺾어 들어가 차를 세워놓고 히나타를 부축하였다.

   직원의 친척이고, 1년 가까이 드나들었던 병원인 만큼 병원직원들은 이미 히나타를 알고 있기에 가타부타 질문을 던지는 대신 휠체어를 빠르게 가져와 히나타를 앉혔다.

 

   “히나타, 기다릴게.”

   “내가 무슨 답을 할 줄 알고.”

   “병원 도착했는데도 가라는 말 안하잖아?”

   “…그렇다고,”

   “여기서 기다릴게. 나중에 이야기 하자.”

   히나타를 마지막으로, 마츠카와는 새로운 파트너를 구하지 않았다. 고추 놀리는 데 잠잠해진 것을 보고 드디어 결혼한 생각이 든 것이라며 집안에서 선을 주도해보았지만 말짱 도루묵, 처음 두 번은 얼굴을 비췄지만 세 번째부턴 자리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어디 한 구석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콕 집어 말할 수 없었지만 히나타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우선 히나타를 다시 만나면 어떻게든 해결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무의식적으로 마츠카와는 자신이 히나타를 원한다고 어렴풋이 느끼기는 했다. 걸리는 것이 있다면 역시나 히나타의 뱃속에 자리 잡은 그것. 히나타를 다시 찾기까지 지체되어버린 것도 그것과 마주해야한다는 고민에 조금 미뤄왔던 것도 있었다.

 

   마음을 굳혔다. 만약 히나타만 괜찮다면.

 

   아이는, 여전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지만 썩어 넘치는 것이 돈이니 돈의 힘으로 어떻게 되지 않을까. 남이 듣는다면 재수 없는 말을 생각했다.

 

   마츠카와는 잠들어 있는 히나타의 얼굴을 하염없이 보았다. 옛날에도 이렇게 히나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는데 뒤늦게 깨달아서, 히나타의 얼굴을 머릿속에 단단히 새겨두려고 난리다. 주책이지. 이제 막 첫 연애를 시작하는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된다.

 

   “음…”

   “히나타.”

   “시끄러.”

   “히나타…”

 

   좀 더 조용히 이름을 속삭였다. 히나타는 얼굴을 찌푸리며 귓가를 손으로 휘저었다. 흘러내린 이불을 끝까지 목까지 덮어주었다.

 

   “아… 아기 내놔.”

 

   눈도 제대로 못 떴으면서 히나타는 갈라진 목소리 마츠카와의 팔을 툭 치며 요구했다. 마츠카와는 조용한 병실을 구두소리를 내며 가로질러 걷더니 이내 한줌만한 따뜻한 그것을 히나타의 옆에 놓아 주었다.

 

   “아들이야.”

 

   무거운 눈꺼풀이 드디어 열린다. 반쯤감긴 눈에서도 아기를 눈에 담은 히나타가 배실배실 웃는다.

 

   “헤헤…. 귀엽다. 맛층 안 닮았어.”

   “…”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 모르겠다. 마츠카와는 얼굴을 긁적이며 아직 힘없이 늘어진 히나타가 아기를 놓치지 못하도록 어정쩡한 자세로 잡아주다가 이내 침대에 올라가 누워 아기와 히나타를 동시에 감싸안은 자세로 누웠다.

   “눈썹도 나 닮았어요. 맛층 눈썹 못생겨서 닮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볼도 귀엽고 손도 귀엽고. 키랑 재물운만 맛층 닮아야 할 텐데. 앗…”

   “왜 그래.”

   “입술은 맛층 닮아 버렸어.”

 

   눈도 못 뜬 아가가 입술을 뾰족 내밀고 있는걸 보며 역시 씨도둑질은 못한다며 히나타는 수선을 떨었다.

 

   “나는 아기가 딸려오는데 어떡해요. 맛층 죽어도 아기는 싫어하면서.”

   “그게 고민이 안 될 정도로 너랑 있고 싶어.”

   “나 때문에 싫어하는 애를 데리고 살겠다고요? 그런 어중간한 마음으로 어떻게 저한테 왔어요.”

   “1년 동안 생각해서 결정한 거라 그렇게 어중간하다곤 생각하지 않는데.”

   “뭐…”

   “그렇게 싫어하던 아기도 상관하지 않을 정도로 네 얼굴이 그리웠어.”

   “가, 가, 갑자기 무슨 낯간지러운 고백이에요?!”

 

   몽롱했던 머릿속이 단숨에 가셨다. 히나타는 영 로맨틱한 대화를 싫어하는 성격이니 몸만 괜찮았으면 자리에서 펄쩍 일어나 마츠카와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졌을 것이다.

 

   “내가 잘할게.”

   “날 언제부터 그렇게 좋아했다고…”

   “뒤늦게 알아서 미안해.”

   “어린애처럼….”

 

   소름이 끼친다는 듯 움츠렸던 어깨에 힘이 빠진다. 어린아이, 아니 어찌 보면 새끼 강아지 같다. 히나타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나에게 기회를 줘. 마츠카와가 히나타의 팔을 꽉 붙들었다. 부탁인지 협박인지 모를 일이다.

 

   “아직도 맛층의 그때 얼굴이 생생해요. 그때 레스토랑에서 임신했다고 말했을 때 입도 못 다물 정도로 충격이었잖아요.”

   “그땐 내가 널 임신시켜서 온 충격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더 이상 너랑 함께일 수 없을 까봐.”

 

   낯간지러워. 히나타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우지 못한다.

 

   똑똑한 사람이 깨닫는 거 너무 늦어요. 4개월쯤에 오지. 그때 섹스하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백화점 안마의자에서 얼마나 오래 앉아있었는데.

 

   조잘거리던 입이 멈추었다. 히나타는 팔꿈치로 마츠카와를 툭 쳤다.

 

   “정말 아기도 괜찮아요?”

   “응.”

   “내가 돈 때문에 오케이 하는 거면 어떡하려고.”

   “상관없어. 난 돈 많으니까.”

   “재수 없고 맞는 말이네요.”

 

   히나타는 턱으로 신생아용 카트를 가리키며 아기를 다시 돌려놓으라고 하였다. 마츠카와는 부서질 듯한 아기를 조심조심 잡고서 카트에 다시 눕혔다.

 

   “히나타, 그래서 결론은…”

   “뭐 딱딱하게 그런 것도 챙겨들어요. 저 수술 들어가고 얼마나 지난 거예요?”

   “한 16시간.”

   “맛층은 한 숨도 안 잔거예요?”

   “응. 네가 언제 깨어날지 몰라서.”

   “피곤하겠다. 비서 없이 혼자 운전해서 왔잖아요.”

   “아니, 뭐…”

   “뭘 빼요. 한숨 자요.”

 

   히나타가 손을 뻗었다. 보호자용 침대는 딱딱해서 안 좋아요. 안 그래도 어릴 적부터 고급침대에서 잤을 마츠카와가 보호자용 침대를 견딜 수 있을까. 마츠카와가 곁으로 오자 히나타는 팔을 잡아 당겼다. 마츠카와가 침대 안으로 들어오니 조금 좁아졌지만 팔베개를 하고 껴안고 있으니 그리 불편하진 않는다.

 

   “조금만 자요, 우리. 아기가 잘 때 같이 자는 거랬어요.”

 

   아기는 울지도 않고 조용하다. 히나타의 가슴팍에 손을 올린 마츠카와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마츠카와 잇세이 X 히나타 쇼요

W.레레(@rego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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