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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레레(@regon_)​

우카이 케이신 X 히나타 쇼요

더운 겨울

   뜨거운 여름, 쓰르라미는 시끄러웠고 습기는 사람을 짜증나게 만든다. 그것이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이유 없이 차였으니.

 

   헤어질 리 없다고 생각했던 그런 상대에게 차인 상심은 생각보다 컸고 배구를 하기 위해선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밖에 없으니 감정조절이 여간 쉽지 않았지만 가을쯤 되었을까 드디어 덤덤해진다. 그렇게 믿었다. 최면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오메가에게 가족을 이루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곧 각인을 말한다. 알파와 베타라던가 베타와 베타, 심지어 소수이지만 알파와 알파여도 관계는 성립이 된다지만 오메가는 오직 알파와의 관계에서만 만족할 수 있었다. 그것도 우성은 우성끼리, 열성은 열성끼리. 필수는 아니지만 저들끼리 짝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상 참 불만스럽다. 무슨 이딴 시스템이 다 있나. 어떻게 바꾸지도 못하는 ‘자연스러움’이라니, 우성 오메가인 히나타는 불만스럽기 짝이 없었다.

 

   미성년자까지 오메가의 페로몬은 굉장히 안정적이지만 성인이 된 뒤로 이리저리 날뛴다고 한다. 한마디로 저 스스로 몸이 닳아 오르기도 하였고 저도 모르게 페로몬을 뚝뚝 흘리고 다녀 알파들을 꼬여낼 수 있다고 한다. 알파가 무더기도 덤비면 어찌되었든 위험하니 오메가는 성인이 되자마자 미리 봐둔 상대와 각인을 한다. 몸에 묻어나는 알파의 페로몬이 방패역할을 해주었고, 동시에 페로몬도 안정적이게 컨트롤 할 수 있다고 한다.

 

   페로몬이 무슨 작용을 한다는데 성교육 때는 꾸벅꾸벅 졸아본 기억밖에 나지 않은 히나타에게 이론은 모두 생략하고, 자신은 성인이 되자마자 자신의 알파를 찾아 나서야한다는 목적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이미 대부분의 오메가는 말을 맞춘 상대가 있기 마련인데 히나타는 말을 아끼기 일쑤였다. 누군가가 있는 것 같긴 한데 말을 하지 않으니 가족도 친구도 배구부 동료들까지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상대가 마땅치 않으면 어서 빨리 소개를 받아야하는 것이 아니냐며 가족들은 여러 명의 알파의 사진들을 보여주지만 히나타는 그것들을 모두 물렸다. 가족들이 답답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제 12월. 각인을 해야 하는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발 빠른 19살 오메가들은 벌써 제 알파들과 각인을 하며 어른이 된 기분을 만끽하고 있는데 히나타 본인도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잘생기고 성격도 좋다던 엄마의 친구의 친척의 어드매의 알파의 사진을 보았지만 직접 만나지 않아서 그런지 확 와닿는 것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 사람 외에는 눈에 차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맺어지는 것은 차일 때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부분이기에 생판 다른 남자와 자신이 손을 잡고 서 있는 모습은 머릿속 그림만으로도 어색하다. 생각도 하기 싫었다.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 다른 사람과 입을 맞추고. 으윽. 히나타는 앓는 소리를 내며 소름이 돋아난 차가운 팔뚝을 벅벅 긁었다.

 

   히나타는 다시 한 번 사카노시타 상점으로 향했다.

 

   그에게 애원하고 부탁했다. 도대체 왜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설명해 달라고 하였지만 우카이의 고집 또한 만만치 않았다.

 

   “우리 이미 1년 전에 약속했잖아요! 이제 와서 왜 말을 바꿔요?!”

   “‘1년 전’ 약속이잖아. 그 정도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어.”

   “이게 오메가한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면서! 알파도 가벼운 마음으로 안 하는 거 알고 있어요! 거기다 코치님이… 안 믿어요.”

 

   히나타는 고개를 저었다. 그 누구도 아닌 우카이가 미래를 정한 약속을 취소할 리 없다고 단단히 고집을 피웠다.

 

   “히나타.”

   “나랑 빨리 각인해요.”

   “히나타!”

   “빨리!! 이 거짓말쟁이야! 나쁜 새끼!! 날! 사랑한다면서!”

 

   악에 받친 목소리가 작은 가게를 찢는다. 우카이를 치고 때리고, 어서 자신의 원하는 그 답을 말하라며 옷을 잡고 늘어지기도 하였지만 우카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네 똥꼬에 얼굴이나 쳐박고 죽어버려!”

 

   아무 반응이라도 얻어 보기위해 되는 대로 소리쳤다. 그 속에 욕도 섞어보았고 정말 있는 힘껏 우카이의 정강이를 쳐보기도 했다. 악 소리와 함께 우카이는 다리를 잡고 몸을 숙였지만 끝끝내 저 무거운 입에서 히나타가 원하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우카이의 얼굴을 계속 보고 있다간 그의 이가 뽑힐 때까지 때릴 수 있을 것 같아 히나타는 그대로 뒤돌아 가게를 나갔다. 뒤에서 늦었으니 데려다 주겠다는 말을 한다. 죽어, 우카이 케이신! 네, 아니오 대답 대신에 가운데 손가락을 날려 버렸다.

 

   가게에서 나간 히나타는 발끝에 걸리는 벽돌을 망설임 없이 주워 들었다. 히나타는 그것을 있는 힘껏 가게로 던져버렸다.

 

   깨진 유리가 히나타의 얼굴에도 박혀버린 것처럼 사나웠다. 가게의 그림자를 통해서 우카이가 깨진 유리창 주변으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보였지만 얼굴을 비춰주진 않는다.

 

   하나라도 더 던져야 분이 풀릴 것 같아 바닥을 훑는데 바보처럼 울컥 눈물이 쏟아져 나와 입술을 깨물었다.

 

   더 때려줄걸. 벽돌로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겨울이라 바람이 쌀쌀 맞기 그지없었지만 몸은 희한하리만치 뜨거웠다.

 

   더웠다가 추웠다가를 반복해서, 일전에 감기나 독감인 줄 알고 병원을 찾아가 봤더니 곧 성인이 되는 오메가들에게 흔히 있는 증상이라고 했다. 곧 첫 히트싸이클이 올 것이라는 증거란다. 정해놓은 상대가 있으면 어서 빨리 각인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약속한 상대는 있긴 한데 이제 와서 싫다고 하는데 어쩌죠? 다른 사람을 알아봐야죠. 다른 사람은 싫은데요. 그래도 다른 사람을 찾아보세요.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렇다고 싫다는 사람과 억지로 할 순 없잖아요.

   

   의사의 말은 너무나 맞는 말이라 더 이상 말대꾸를 하지 않고 병원에서 나왔더랬다.

 

   히나타는 버스를 뒤로 하고 평소 자전거를 통해 달리던 길 위를 걷기 시작하였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 겨울 날씨 임에도 그리 춥지는 않았다. 히나타는 시린 손을 주머니에 넣고서 우카이와의 역사를 곱씹었다.

 

   우카이와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분위기가 이상하게 변하더니, 3학년이 되기 직전에 장래를 약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싫단다.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미래를 약속하는 것은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법이 아니다. 오메가의 미래가 걸려 있기 때문에 웬만큼 질 나쁜 알파에게 걸리지 않는 이상은 오랫동안 고민하고 생각하여 상대를 정하는 것이다. 각인은 한 번 맺으면 다시 풀 수도 없는 것이므로 하여튼 알파와 오메가 둘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우카이와의 역사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다. 그래도 2년이면 충분히 서로에 대해 생각하기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새해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어떤 이유가 있든 우카이 쪽이 이기적인 것이다.

 

   발을 멈추고 히나타는 뒤를 돌았다. 빠른 걸음 덕에 사카노시타 상점은 벌써 보이지 않는다.

 

   발끝이 뜨끈뜨끈하다. 고민은 등줄기를 타고 머릿속을 잠식했다. 왼쪽 발은 사카노시타 상점으로 향하였고, 다른 한쪽은 늦은 밤 어서 집에 가라고 등을 떠미는 것 같았다.

 

   잠시 자리에 서서 머리를 짚었다. 미래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어두운 골목길, 눈이 곧 내릴 것 같은 서늘한 바람과 하는 것이 마뜩치 않았지만 지금 이대로 집에 간다면 스스로도 결국 우카이를 포기할 것 같았다. 다른 남자를 떠올리는 것은 여전히 싫고 우카이를 포기하기는 싫었다.

 

   우카이가 세상에 없는 삶은.

 

   그러니까 다른 남자의 옆에 서있는 미래는.

   좀 더 중후해진 그와 좀 더 어른이 된.

   발을 딛었다.

 

***

   케이신이라고 불러도 돼요? 라는 히나타의 질문에 우카이는 건방진 녀석, 이라며 히나타의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애인끼리는 이름으로 불러야죠. 당당하게 말했지만 사실 그 때는 사귀던 사이는 아니었다. 일방적으로 히나타가 우카이에게 좋다며 농담 반, 진담 반을 섞어 말하던 때였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우카이는 히나타가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할아버지는 이름 대신 녀석이나 손주 자식이라고 불렀고 어머니는 아들이라고 불렀으므로 이름은 어지간해선 불릴 일이 없다고 하였다. 네가 말하는 내 이름도 좋네. 어색해하는 것 같지만 좋아보였다. 자신 보다 더 소년 같은 얼굴을 하고선, 누가 어린앤지 모르겠다며 우카이의 어깨를 장난스레 톡 쳤다.

 

   가랑비 젖어가듯 손등을 남몰래 쓸며 깍지를 끼는 사이가 되었다. 아무래도 히나타가 아직 학생이고 제자라는 포지션에 힘입어 손을 잡는 것으로 풋풋한 1년의 연애는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갔다.

 

   사귀자는 말은 없었지만 사귀는 사이가 되었고, 각인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히나타는 자연스레 각인할 알파를 우카이로 보고 있었다. 그때는 확실히 하기 위해 직접 말했다. 당연히 우카이는 그것에 승낙할 것이라고, 묻지 않아도 되는 것에 부러 지장을 찍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문제는 그 후로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너와의 각인이 싫다.’라고 말한 우카이에게 자신이 아니면 각인할 상대도 없는 주제에! 라고 쏟아 붙인 것이 원인이 된 것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성인이 되자마자 각인을 하는 사회였고 스무살이 넘으면서 비각인인 사람은 하늘의 별따기, 특히 알파가 오메가를 찾기란 더더욱 그러했다. 오메가야 페로몬 조절을 위해 알파와의 각인이 필수였고 오메가의 수도 알파에 비해 적었다. 그러니 각인시기를 놓친 알파는 자연스레 베타나 알파에게 눈을 돌려야 했는데 앞서 말했다시피 성인이 되면 각인을 하는 사회이다.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니 각인 시기를 놓치면 자연스레 도태되는 법이다.

 

   하여튼 말싸움 이후로 삐그덕거린다 싶더니 여름 때에 널 놔 주겠다고, 말이 좋아 놔 주겠다는 것이지 그러니까 결론은 차였다. 차인 것이다. 누구 맘대로 놔 주나, 나는 놔 줄 마음이 없는데. 차라리 싫어졌으니까 헤어졌다고 하지. 어줍잖은 동정심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사실은 마음이 엇나있던 그 상태는 좀 더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진통으로 생각했었다. 조금 긴 진통.

 

   자신이 다른 남자와 서 있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것은 잘못된 그림이다. 그러므로 우카이가 다른 사람과 붙어 있는 것 또한 상상하지 못한다. 그 꼴을 누가 볼 줄 알고.

 

 

 

 

   사카노시타 상점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빠르기도 하여라, 히나타가 부숴버린 창문에는 비닐을 테이프로 고정하여 꼼꼼히 막혀져 있었다. 쓸데없이 꼼꼼해서는, 문을 쾅쾅 두들기는데 어떻게 히나타인 것을 알았는지 안은 조용하고 어둡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아 가게 안을 살펴보았다. 불투명한 유리 창문으로는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었지만 작은 소리를 들었다. 발을 끄는 소리. 아주 잠깐이지만 우카이도 저를 무시 못 한다.

 

   히나타는 다시 바닥을 훑었다. 신발에 걸리는 자갈들을 해치우며 바닥을 쓸다가 한 주먹 크기의 적당한 크기의 돌을 주었다.

 

   “케이신, 거기 있으면 비켜!”

 

   일부러 비킬 때까지 기다려주었는데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발소리는 멀어지지 않는다. 히나타는 마지막 경고를 보냈다.

 

   “난 분명 경고했다!”

   “잠…!”

 

   와장창, 회색 돌이 문을 통과했다. 다시 한 번 문이 깨졌다.

 

   데굴데굴 굴러간 돌은 작은 유리조각들을 으깨며 가게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드디어 문이 벌컥 열렸다. 저 깨진 유리를 해치우고 손을 집어넣어야 하나 고민이 됐는데 잘된 일이다.

 

   “히나타…!”

   “조심하라고 했죠?”

   “…젠장… 이게 무슨…!”

 

   우카이는 머리를 감싸쥐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람이 쌩쌩 들어오는 구멍과 히나타를 번갈아 보았다. 겨우 쓸고 닦아 유리조각들을 치워놨는데 전보다 더 많은 유리조각들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하…”

   “케이신 탓이야. 문 안 열어 줬으니까.”

   “…넌 안 다쳤냐.”

 

   누가 누굴 걱정한담.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리고 히나타는 당당하게 가게 안으로 입성했다. 빠르게 우카이를 훑었다. 당황한 기색이 사라지질 않았지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유리조각을 밟았다. 버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유리조각 날리잖아.”

   “케이신, 날 봐.”

   “문 좀 수습하고 집에 데려다 줄 테니까 카운터에 앉아 있어.”

   “싫어.”

   “히나타.”

   “내가 정말 싫어진 거야? 이렇게 변덕 부릴 거면 나랑 왜 그런 약속을 했어?”

   “히나타…”

   “당신이랑 대화를 하려해도 도대체 진도가 안 나가잖아! 대화도 안 하려들고, 가게 문도 안 열어주고!

   “정말 현실적인 이유야.”

   “이유가 뭐든 간에, 그 이유 안에 더 이상 날 좋아하지 않는 다는 이유라도 들어가?!”

   우카이는 입술을 짓이겼다. 저 입에서 나오는 답이 무엇이던 간에, 저 고민하는 모습은 앞으로 말할 것이 거짓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널 더 이상,”

   “너 거짓말 못하거든?! 나보다 못하면서 무슨…”

   우카이는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떠올랐다. 우성 오메가와 열성 알파의 3일을 촬영한 것이었다.

   그놈의 페로몬이 뭐라고, 열성과 우성이 품고 있는 페로몬의 성질과 양은 다른 법이라고 한다. 그래서 열성은 열성끼리 우성은 우성끼리 맺어지는 것이 수순이다. 종종 이 차이를 극복하고 각인하여 서로의 페로몬을 몸에 담아 두는 경우가 있다지만 부족한 페로몬의 양에 우성은 몸이 비쩍 말라가고 과한 페로몬 양에 열성은 몸이 타오르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끝이 좋은 경우는 거의 없다.

 

   오메가의 수는 많지 않다. 자신은 분명 히나타를 채워주지 못할 것이다. 돌출한 결과는 간단했다.

 

   히나타는 앞으로 성인이 될, 미래가 창창한 제자였고 자신은, 좋게 말하면 굶어 죽지 않을 작은 밭과 작은 가게를 가지고 있는 사람. 서른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카이는 처음부터 히나타와 자신은 날 때부터 어울릴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아주 천천히 관계가 발전되었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히나타와 깊은 사이가 되어버려 열성과 우성의 차이를 미리 인식하지 못했던 과거의 멍청함이 한탄스럽다.

 

   하다못해 외모까지 봐줄 만하지 않으니 히나타와 만나고 나선 면도나 피부, 머리 관리에 힘을 썼지만 28살을 먹고 힘을 쓰면 뭐하나, 1년 내내 한 관리는 티도 나지 않는다.

 

   오늘 아침에 푸석한 볼을 거울 앞에서 늘렸다. 잘한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고 조그만한, 달라붙으면 허리에 매달리는, 고목나무의 매미지, 어딜 봐서 애인사이인가. 코치면 코치답게 제자 앞길을 닦아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라고 오늘 아침 결심했던 차였다.

 

   뒤숭숭했던 속을 오늘에서야 갈고 닦았더랬다.

 

   “우린… 우린 맞지 않아.”

   “뭐가? 내가 케이신 만큼 키가 안 커서? 아니면 어려서? 하지만 나 이제 곧 성인인 걸. 대체 뭔데? 내가 다 잘할게, 응?”

   “생각해 보면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많잖아.”

   “생각할 필요도 없어. 난 여름 내내 힘들었을 뿐이야. 그냥 이거 한 마디만 말해. 내가 싫어진 거야? 내가 싫, 싫어진 거면 나도… 나도…”

 

   구차하게 굴지 말아야 하는데 마음은 쉽지 않다. 입도 쉽지 않다. 히나타는 말끝을 흐리며 우카이를 쳐다보았다. 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애원하는 것과 같았다. 거절의 말은 믿지 않겠지만 들어도 상처다. 자신과 마찬가지의 표정이 바로 앞에 서 있다. 약간의 동요, 약간의 후회, 약간의 걱정스러움. 히나타는 손을 뻗어 우카이의 소매자락을 잡았다.

 

   “나 정말 싫어진 거예요?”

 

   눈물로 호소하고 싶진 않아 꾹꾹 참았던 눈물이 목소리에서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다.

 

   “…우리 집 잘 살지 않아. 낡은 가게랑 작은 밭이 끝이고. 빚도 있고. 난 열성이라 널 채워주지 못해.”

   “상관없어! 그런 게 무슨 대수야!”

   “네가 아직 어려서 그런 거야!”

   “싫어! 네가 아니면 싫다고! 멍청아! 지 생각 밖에 못하는 멍청이! 죽어버려! 나 가지고 놀았지?! 나 아니면 누가 널 봐 준다고!”

 

   되는 대로 내뱉은 히나타는 숨을 몰아쉬었다. 내뱉고 나서야 무슨 말을 했는지 곱씹어 봐야했다. 상처되는 말, 모질한 말, 마음에도 없는 말만 골라서 했다.

 

   히나타는 다시금 우카이를 올려다 보았다. 표정의 변화 없이 우카이는 읽을 수 없는 얼굴로 히나타를 보고 있었다. 눈썹이 구겨진다. 화가 난 것인지 침 삼키는 소리를 내며 고요한 분위기를 견뎌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후회 반, 자신을 버리려고 하니 욕을 해도 마땅하다라는 생각이 반, 히나타는 우카이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지만 그의 입은 한참이나 열리지 않았다. 결국 먼저 입을 열고 행동한 쪽은 히나타였다.

 

   “반말하고 너라고 부른 거 사과할게요. 방금 막말한 것도 미안해요. 똥꼬에 얼굴 쳐박고 죽으라는 말도 미안해요. 손가락 욕도. 벽돌 막 던진 거랑, 두 번이나 문 부숴버린 것도.”

 

   코끝이 들뜬다. 킁 하고 코를 삼켜도 콧물이 조금씩 흘러나오려 하기에 팔로 코를 훔쳤다. 목소리 속엔 물기가 여려있었다. 이것마저 우카이가 거절을 한다면 더 이상 고집 비우지 않고 물러날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제대로 말해야 한다. 코 먹은 소리 말고, 울먹이는 목소리도 안 된다. 히나타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저랑 부디 각인해주세요, 케이신.”

   “히나,”

   “소꿉놀이처럼 장난으로 이러는 거 아니에요. 이제껏 가벼운 마음도 아니었어요. 케이신은 아니에요?”

 

   히나타를 말을 온전히 끝낼 수 없었다. 우카이의 앞치마가, 우카이의 알파 페로몬이 진득하게 묻어 있는 그것이 코끝을 비볐다.

 

   “우카이이….”

 

   기어코 울음이 터져버렸다. 안 울려고, 우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히나타는 있는 힘껏 눈과 코에 힘을 주고 커다란 덩어리가 맺혀있는 목을 꼬집었다. 어서 내려가라, 눈물의 주머니 같은 그것이 도통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평생 널 채워줄 수 없을 거야.”

   열성이니까. 히나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 따윈 상관없다고 하였다.

 

   “나랑 있으면 그 허전함을 평생 지울 수 없을 거야. 그래도 괜찮아?”

   “괜찮,”

   “그렇게 가볍게 말하지 마!”

   “가볍게 말하는 거 아니래도!”

   “…”

   “…아니에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우카이가 원망스러웠다. 이렇게 간절하게 우카이를 원하는데 우카이에게 자신이란 그저 지나가는 인연일 뿐인가? 히나타는 자리에서 발을 굴렀다. 마음만 앞선다. 얼마나 좋아한다고 말해야 그깟 빈자리는 상관없는 것을 알겠다며 우카이가 자신을 받아줄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건대, 우카이는 결단코 자신에게 마음이 있었다.

 

   히나타는 우카이를 품에 꽉 안았다. 잔근육이 느껴지는 허리를 있는 힘껏 껴안고 까치발을 들어 입을 맞췄다.

 

   “당장 배구를 못하게 되도 상관없어요.”

   “뭐?”

   “평생 내 몸이 비어 있어도 상관없어요. 우카이가 같이 있어주기만 한다면, 뭐든 다 할 거예요.”

 

   히나타의 손이 우카이의 손을 맞잡았다. 조금씩 히나타의 페로몬이 새어나와 우카이의 손끝에 머물렀다. 노크를 하듯이 쿡쿡 찔렀다. 부디 자신을 받아 달라고 애원했다.

 

   “저의 가족이 되어 주세요, 우카이 케이신.”

 

   두 사람의 페로몬이 손끝을 시작으로 엉겨 붙는다.

 

***

   각인을 했다고 해서 몸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어른이 된 기분은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멋있는 내 애인 자랑해도 되나? 친구들에게 사진을 들이대며 말할 생각이 가슴이 조금 두근거리기도 했다. 아침 7시라는 비교적 늦은 시간에 눈을 떴다. 우카이도 만만치 않게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지만 각인의 여파인지 눈을 뜨지 않는다.

 

   눈을 감고 집중을 하면 자신의 페로몬 외에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몸 구석구석 얇게 퍼져 있는 알파의 페로몬, 그것이 자신을 지켜주는 것 같아 든든했다. 열성이면 어떻고 또 우성이면 어떤가.

 

   꾸물꾸물 우카이의 품으로 들어갔다. 숨을 죽이면 우카이의 심장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페로몬이 솔솔 새어나와 향초 같기도 하였다.

 

   그의 어깨가 향이 짙다. 어제 저 곳을 유독 물고 빨고 깨물고 난리를 쳤는데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시 핥아 보았다. 꽃을 핥는 것처럼 향이 혀끝에 진득하게 매달려 있다.

 

   “아침부터 뭐하는 거야.”

   “깼어요?”

   “핥고 있으니까. 간지러워.”

 

   아직 잠에 취한 나른한 목소리가 듣기 좋다. 더 듣고 싶어 이것저것 질문을 던져 보았다.

 

   “잘 잤어요?”

   “응. 너는, 몸은 어때?”

   “괜찮아요. 조금 나른하지만….”

   “조금만 더 있다가 일어날까? 어차피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헤헤, 신혼부부 같아.”

   “비슷하지, 뭐.”

 

   어제까지만 해도 싫다고 거절한 사람 같지 않은 대답이었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 우카이에게 입을 맞췄다. 서로의 담백하던 꽃향기가 점점 짙어진다. 혀를 가볍게 깨물고 치열을 훑었다.

 

   우카이의 손끝이 따뜻하고 간질간질하다. 깍지를 낀 손에서 우카이의 향기가 한대모아 흩어진다. 그것이 아까워 히나타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주먹을 쥐고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듯 빈손을 꽉 쥐었다.

 

   숨을 마실수록 온통 우카이 냄새뿐이 나지 않았다. 냄새 좋다고 히나타는 우카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고 잔잔한 향이라 히나타는 우카이의 어깨에 코를 박아 넣고 크게 숨을 마시었다. 술은 한 번도 마셔본 적 없지만 취한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우카이 쇼요.”

   “응?”

   “아니면 히나타 케이신.”

   “둘 다 좋아.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따를게.”

 

   히나타의 속눈썹이 어깨에 닿아 간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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