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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어떻게 생겨요

W.은우(@enwoo_hq)​

보쿠토 코타로 X 히나타 쇼요

   집 안에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들린다. 날카로운 음성이 귀에 따갑게 꽂히고, 더더욱 그것이 애인의 목소리였기에 보쿠토 코타로는 베이컨을 노릇하게 굽던 프라이팬을 놓치고 말았다. 회색빛의 대리석 바닥에 프라이팬이 떨어져 파열음을 자아냈다.

 

   “쇼요!”

 

   요 근래 잠이 늘은 히나타를 위해 일찍 일어나 간단하게 먹을거리를 준비하던 보쿠토가 다급히 달려왔다. 옷은 흐트러지고 머리는 까치집이 나풀거린다. 하지만 그는 겉모습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걱정스러운 건 배를 감싸 안고 끙끙대는 히나타 쇼요가 망막에 가득 찰 뿐이었다.

 

   “정신 차려봐.”

   “배 아파. 으, 너무 아파서.”

 

   보쿠토보다 나이가 많은 히나타는 연애를 할 때도, 결혼을 한 이후에도 앓는 소리를 낸 적 없다. 대학생 보쿠토가 취업을 하기 전에 직장 생활을 먼저 하던 쇼요는 어린 연인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애썼고, 신입 사원으로 입사한 보쿠토가 매일 밤 회식으로 집에 네 발로 기어와도 잘 참았다며 조금만 힘내자 힘을 불어넣어주곤 했다. 그러나 요새 히나타 쇼요는 평소와는 상이한 생활 양태를 보였다. 짧은 시간 내에 하품을 어찌나 많이 쉬고, 또 보쿠토가 잠시 볼일을 보러 나가면 잠을 계속 잤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같아. 아니, 공주보다 예쁘지. 순간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지만 고개를 휘휘 저어 상상을 흩트려놓았다. 긴급한 시간에 쓰잘데기 없는 망상할 겨를이 없다. 보쿠토 코타로.

 

   “쇼요, 히나타 쇼요.”

   “코타로. 나, 나, 죽을 것 같아.”

 

   살려달라며 하얗게 질린 연인의 얼굴을 직면하자 보쿠토 코타로는 더 이상 사고(思考)할 수 없었다. 세간에서 초딩 같다며 유치함을 널리 인정_후쿠로다니의 기분파 주장으로_받은 그였지만 우직한 황소처럼 쇼요에게 따듯한 옷을 잔뜩 입히고는 병원을 향해 뛰었다. 119에 전화하면 일반 주택에 느리게 온다는 속설이 있었고, 공휴일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제기랄. 하필이면 빨간 날에 히나타의 고통이 찾아오다니.

 

   “조금만 참아. 병원 곧 도착해.”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겠지만 고통의 정도가 지나쳐 말도 하지 못하는 쇼요를 내려다보는 보쿠토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아픈 사람은 히나타 쇼요인데, 두꺼운 겨울 외투 하나 걸치지 않고 집에서 입는 의복 그대로 입고서 칼바람을 맞는 보쿠토는 시선을 끌었다. 얇은 나그랑티와 줄 세 개의 검정 츄리닝, 그리고 슬리퍼 차림의 남성은 겨울철에 결코 흔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게 닿아오면 주위를 두리번거릴 만도 했지만 보쿠토는 개의치 않았다. 사실 그는 타인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등 뒤에 납작하게 붙어있는 쇼요의 체온이 내려가는 일이 우선이었다.

 

 

   “살려주세요!”

 

   집 근처 HQ대학병원에 도착한 보쿠토 코타로가 소리쳤다.

 

   “사람이 아프다고!”

 

   그는 따듯한 병원 내부에 들어와서야 쇼요를 조심스레 내리고선 공주님 안는 자세로 바꿨다. 공휴일에도 끊임없이 들어오는 중환자 때문에 병원은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였고, 병원 내부에서 다급한 사람은 보쿠토 코타로를 포함한 환자의 지인들뿐이었다. 병원 관계자들은 의료 기록 차트를 들고서 정해진 일과를 수행해 나갔다. 보쿠토는 온 몸이 떨렸다. 의학 지식이 얕은 평범한 회사원은 반려자의 병명을 모르고, 아픈 원인을 몰랐고, 단지 원래의 해사한 웃음을 되찾아 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사와 간호사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했다. 살려주세요. 우리 쇼요가 아파요.

 

   몇 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체감 상 며칠은 지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몇 시간도 흐르지 않았겠지. 피가 철철 나는 외상을 입은 환자들과 각종 재해를 입은 사람의 순으로 의사의 손에 닿을 수 있었다. 보쿠토 코타로는 인정했다. 물론 머리로 말이다. 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한 개인에게 중요한 사항은 그와 연루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경상자와 중환자를 비교할 때 의사는 중환자에게 먼저 달려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통의 경중을 제외해본다면 병원에 도달한 순서로 치료가 진행되어야 마땅하지 않냐며 한 회사원은 마음속으로 확성기를 대고 외쳤다. 보쿠토 코타로는 침을 연신 삼키고 손톱 주위의 연한 살을 뜯었다. 나쁜 습관이라며 입사하기 전 히나타 쇼요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성은 본능을, 머리는 가슴을 이기지 못했다.

 

   “보쿠토 코타로……? 님! 들어오세요.”

 

   간호사는 머뭇거렸다. 간호사가 고등학교를 재학할 때 유명한 배구 선수의 이름이었다. 사실 보쿠토 코타로와 히나타 쇼요는 학창시절 배구를 사랑했고,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다. 두 사람은 오렌지 코트에 서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토스를 치고, 코트를 날아다닌 기억이 있다. 그로 인해 보쿠토는 후쿠로다니의, 히나타는 카라스노의 에이스라고 불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열정과 치기보다는 현실의 장벽이 크게 다가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후 밥벌이를 하기위해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히나타 쇼요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 보쿠토 코타로는 1학년이었다. 카라스노에 작은 거인이 있대, 라는 소문을 듣고 도쿄의 꼬맹이는 혈혈단신으로 미야기현에 도착했다. 소문대로 히나타는 날았고, 반짝반짝 빛났다. 배구할 때 가장 아름다운 그 사람이 탐나 보쿠토가 연신 고백한 결과_기분 나쁜 카게야마와 츠키시마를 애써 무시했고_두 사람은 연애를 할 수 있었다.

 

   매 순간 히나타는 보쿠토보다 어른스러웠다. 블로킹을 할 때 팔을 뻗는 자세를 교정해줬고, 코트를 가로지르며 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3년 간 함께한 배구와의 시간을 종결한 후 나라를 잃은 듯 펑펑 우는 보쿠토를 꼭 안아준 사람도 바로 히나타 쇼요였다. 수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고난을 넘어가도록 도와준 제 연인을 잃고 싶지 않았다. 히나타 쇼요는 보쿠토 코타로에게 그런 존재다.

 

   “감사합니다. 이 사람 살려주세요. 제발요. 제발.”

   “진정하세요. 히나타 쇼요 환자 꼭 살려내겠습니다.”

 

   믿음직한 얼굴을 대면하자 보쿠토의 마음의 짐이 조금은 덜어졌다. 그러나 완전히 안심할 수 없었다. 병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의료진이 환자를 이송한 채 사라지자 그제야 보쿠토는 근처 의자에 주저앉았다. 다리 힘이 풀렸다. 여기서 보쿠토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운동신경이 좋다며 환호성을 여기저기에서 받았고, 사회에서는 어린 나이에 좋은 회사 다닌다고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다녔었는데 말이지. 인간은 참으로 작은 존재였다. 의자에 앉은 보쿠토는 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참을 있었다. 히나타의 말간 얼굴이 보고 싶었다.

 

 

 

   “보호자분, 들어오셔도 됩니다.”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는 보쿠토를 부르는 음성이 들렸다. 고개를 숙인 보쿠토는 착잡한 얼굴로 일어났다. 아니, 이윽고 달음박질쳤다. 뛰시면 안 된다고, 여기는 병원이라는 의료진의 말을 무시해선 안 되지만 몸은 머리를 거역하고 말았다.

 

   “우리 쇼요 괜찮아요? 어디가 아프대요? 갑자기 배를 부여잡고서 울먹거리는데……. 괜찮다고 해주세요. 살려주세요.”

 

   랩을 하는 것 마냥 말을 쏟아내는 보호자를 보고 의사는 허허 웃었다. 거참. 공휴일에 대학병원에 올 문제와는 차원이 달랐다. 걱정은커녕 케이크를 사서 축하를 해야 할 일이었다.

 

   “아이고. 걱정이 많으셨던 모양입니다.”

   “남편이 쓰러졌는데 걱정을 안 하면 사람입니까? 괜찮나요? 어디가…….”

 

   의사는 미간을 한 번 찡그리고서는 제재를 가했다.

 

   “괜찮아요. 안 아파요.”

   “아프다고 쓰러졌어요. 배가 아프다고 했어요. 원래 아픈 일은 혼자서 해결해서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사람인데, 쇼요가 한참 어린 저에게 아프다고 했어요.”

   “축하드립니다. 엘사 옷을 준비하셔야겠어요.”

   “네?”

 

   갑자기 엘사 옷이라니. 쇼요가 아픈데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인가.

 

   “뭔 소립니까. 엘사라니요.”

   “예쁜 따님이 생기셨습니다. 남성분이 임신을 하시니 몸이 갑자기 변해서 복통을 호소하신 모양이에요.”

 

   임신이라니. 보쿠토 코타로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딸이란다. 아프지 않다니까 두 번째로 그의 다리가 풀리고 말았다. 긴장이 한 순간에 사그라지자 표정관리조차 불가능했다. 이목구비가 갑자기 삐죽삐죽 변하더니 온갖 곳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매스컴에서 다 큰 성인 남성이 의사 선생님 앞에서 울음을 폭포수처럼 흘리는 꼴을 이해하지 못하는 보쿠토였으나 오늘의 일을 통해 공감할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보쿠토 코타로는 히나타 쇼요가 아픈 게 세상에서 가장 싫었다.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가족이라고들 한다. 결혼을 하기 이전에는 보쿠토 자신의 가정이 최우선이었으나, 두 사람이 혼인한 이후로는 히나타 쇼요가 전부였다. 어쩌면 보쿠토 자신의 인생보다 더욱. 보쿠토에게 자신과 히나타 쇼요는 비교가 불가능했다. 단연코 후자가 중요했다.

 

   학창 시절 동안 빛나는 히나타를 쫓아다녔고, 성인이 된 후에도 보쿠토에게 태양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제 인생을 걸었던 배구가 더욱 좋아진 계기는 히나타가 제공했다. 배구를 그만둔 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의지를 해 준, 한평생 머리를 써보지 않은 보쿠토가 공부를 시작할 때 차근차근 학문을 알려준 히나타 쇼요는 소중한 사람이다.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의사 앞에서 허리를 있는 힘껏 웅크린 채 어린 아이처럼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성인 남자는 이상한 모양새였다. 그것도 억울해서 울지 않고 기쁨에 찬 울음이 원인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원래는 아이의 성별을 말하지 않는데, 따님이라고 언급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화를 계속 내실 듯싶어 몰래 말씀 드리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압니다. 죄송합니다.”

 

   흐엉, 눈물과 콧물이 나와서 훌쩍훌쩍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면 쇼요는 언제 깨어나나요?”

 

   임신을 했다고 말을 해도 말을 죽어라 듣지 않는 남자아이 같았다. 의사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큰 문제가 아니라 그저 몸의 구조만 변했다고 말한 게 수 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 젊은이는 답답한 축에 속했다.

 

   “잠시 피곤해서 쓰러졌으니 몇 시간 후면 깨어나실 겁니다. 이제 몸조리 잘 하셔야 해요. 보호자 분께서 맛있는 음식 공수하셔야 하고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링거를 맞고 있으니 말이에요.”

 

   조금 전 실려 온 여리여리한 환자에 비하면 덩치가 큰 보호자는 눈망울이 금세 촉촉해졌다. 마치 주인을 잃은 거대한 부엉이가 떠올랐다. 가만 부엉이일까, 올빼미일까. 의사는 한숨을 쉬었다. 주인과 거리가 멀어진 지 얼마나 지났다고 보고 싶은 내색을 내는 형국이 웃기기까지 했다.

 

   “환자분이 머무르시는 병실을 안내해드릴까요?”

 

   의사는 보호자를 본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그의 대답을 예상할 수 있었다. 또한 정확히 맞출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네!”

 

   그제야 보쿠토의 입가에는 다소 미소가 자리했다. 그리고 의사는 보호자의 허리 부근에서 털이 복슬복슬한 꼬리가 흔들리는 환상을 보았다. 이 보호자는 아무래도 주인 곁에 있어야하는 모양이다.

 

 

 

   보쿠토는 또 뜀박질을 했다. 보쿠토를 안내하기 위해 앞선 간호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분명 뛰시면 안 된다, 이 곳에는 수많은 환자들이 있기에 정숙해야 한다는 경고를 신신당부했으나 환자를 어찌나 만나고 싶어 하시던지 죽어라고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호사는 보쿠토 코타로가 밉지 않았다. 축 처진 흰색 머리칼을 도담도담 쓰다듬어주고 싶어서 때문일까. 보쿠토가 아닌 다른 이였으면 날카롭게 저지했을 터인데 그는 이상하게도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사내였다.

 

   “621호입니다. 조용히 들어가세요.”

 

   보쿠토가 조심스레 문을 열자 침실 위에 빽빽이 꽂힌 여러 개의 링거와 쥐죽은 듯 눈을 감고 있는 히나타가 보였다. 다행이도 고통을 호소하던 집에서의 안색보다 많이 호전되었다. 보쿠토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쇼요. 히나타 쇼요.”

 

   평소라면 보쿠토가 아무리 작게 불러도,

 

   “응, 코타로.”

 

   대답을 해줄 사람이었지만 누워있는 쇼요에게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보고 싶어.”

 

   오늘은 주말이다. 분명 주중의 바쁜 업무가 모두 끝난 후 기쁜 마음으로 새롭게 맞이할 오늘을 기대했었지만 병원에서 공휴일을 맞이할 상상은 원하지도 않았고 해보지도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보쿠토 코타로는 퍼뜩 의사가 한 말이 뇌리를 스쳤다. 엘사.

 

   겨울왕국의 여왕님. 토지를 꽝꽝 얼어붙게 만드는 사람. 여자아이들의 아이돌. 보쿠토 코타로와 히나타 쇼요 사이에 딸이 태어난다는 희소식이었다.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할까.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아이의 이름을 되뇌었다. 성은 보쿠토로 할래. 우리 쇼요는 자고 있으니까 남편이 의연하게 생각해야지. 그리고 내 성으로 하고 싶어.

 

   그리고 보쿠토는 딸에게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내 이름 코타로와 형의 이름 쇼요를 적절히 조합하는 거야. 아니야, 태양이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보쿠토 타이요(太陽). 태양이라, 의미는 좋지만 아무래도 남자 같은데. 다들 아들인 줄 알겠다. 히카루(). 빛나다는 의미이니 좋다. 무언가 더 좋은 이름은 없을까. 지금 곤히 잠든 쇼요는 알지 못했다. 보쿠토는 연신 이름을 강구하고 있었다. 선물, 사랑, 꽃, 아름답다. 무엇이 좋은지 모르겠어. 그래도 빛나는 쇼요를 생각하면 히카루()가 가장 잘 어울렸다.

 

   고등학생 시절 들어왔던 히나타 쇼요를 향한 소문부터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인식과, 보쿠토 코타로의 생각까지 제 연인은 아무래도 가장 빛나는 사람이었다. 지금 역시 그랬다. 피곤해서 눈을 잠시 붙이고 있지마는 그 모습마저 반짝반짝 빛이 아롱인다. 곧이어 정신을 차린 쇼요를 보고 꽉 끌어안은 보쿠토는 첫 마디를 속삭였다.

 

   “자기, 잘 잤어? 우리 딸내미 이름은 보쿠토 히카루야.”

 

   그리고 히나타 쇼요는 보쿠토 코타로의 등허리를 세게 내리쳤다. 무슨 소리야. 그것도 그렇고, 애 이름으로 장난치지 마.

 

 

***

 

 

   “지금은 좀 괜찮아? 몸은 어때? 많이 놀랐잖아.”

 

   히나타가 깨어남과 동시에 안부를 몇 번이나 묻는지 모르겠다. 보쿠토 코타로는 아이마냥 히나타 쇼요에게 딱 달라붙어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고목나무와 매미를 떠올릴 것이다. 매우 조그만 고목나무와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매미 말이다.

 

   “괜찮아. 많이 걱정했지. 놀랐어? 추운데 옷이 그게 뭐니. 형이 걱정했잖아.”

 

   병실 침대에 누워 찬찬히 보쿠토의 착장을 바라보던 히나타는 미간을 찌푸린다. 바람이 차게 부는 혹한의 날씨임에도 보쿠토는 얇은 티셔츠와 츄리닝, 그리고 슬리퍼를 신고 헤헤 웃는다.

 

   “쇼요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형이라고 부르랬지.”

   “내가 훨씬 큰데 쇼요라고 부르고 싶어. 히나타 쇼요.”

 

   평상시 같으면 롤링 선더를 보쿠토를 향해 날렸겠지만 히나타는 기력이 없었다. 그래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렴. 역시 젊음은 좋은 것이군. 원체 학생 시절부터 튼튼하여 기절은커녕 보건실도 자주 들리지 않았는데 정말이지 오랜만의 병원이었다. 그것도 주말에 말이다. 코타로가 정말이지 놀랐겠구나. 제 어린 연인은 몸만 컸지 말하는 어휘나 사고방식은 아이처럼 순수했다. 남편이 다쳤으니 병원에 가야 하고, 공휴일이니 119는 늦게 도착할 듯싶으니 추운 날씨에 몸소 히나타 자신을 업고선 전력질주하는 사람이 천지삐까리에 어디 있겠는가. 헌신하는 남편을 가진 사실과 더불어 히나타는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유로는 뱃속에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이가 있다니.”

   “맞아. 그래서 보쿠토 히카루!”

   “딸 이름은 차차 정하자.”

   “형처럼 빛나는 아이를 갖고 싶어서 이름을 히카루라고 생각했어.”

   “아이구야. 남부끄러운 줄도 모르겠다.”

 

   가끔씩 보쿠토는 히나타의 얼굴을 발갛게 물들일 만큼 간질간질한 말들을 속삭인다. 선배님의 스파이크는 일본 최고에요. 눈으로 좇지도 못하겠어요. 카게야마 선배님과 히나타 선배님의 속공은 정말이지 대단해. 누가 작다고 했어요. 이 코트 위에서 가장 큰 사람이 히나타 쇼요인데. 어떻게 선배님은 모든 블로킹을 막아내실 수 있나요. 너무너무 멋있어요. 형, 어떤 방법으로 나셨어요? 방금 코트 왼편에서 오른쪽으로 순식간에 이동하셨어. 신기해요. 있잖아요, 저는 말이에요. 형 같은 스파이커가 되고 싶어요. 함께 오렌지 코트에서 만나요. 제 꿈이에요. 형. 너무너무 예뻐요. 형. 사랑스러워요. 좋아해요. 쇼요. 사랑해.

 

   그래서일까. 작은 거인을 만나고 싶다며 위풍당당하게 배구부 철문을 밀고 들어선 도쿄 꼬맹이와 교제를 시작한 이유가. 히나타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이제는 배구와 멀어지자고 다짐한 순간, 당신 같은 스파이커가 되고 싶다는 보쿠토 코타로의 빛에 끌려서 다시금 배구공을 만질 수 있었다.

 

   “너와 연애할 줄 몰랐어.”

   “나는 형이랑 연애하고 싶었는데.”

   “심지어 결혼을 할 줄이야.”

   “결혼도 하고 싶었어.”

   “그런데 지금, 내 뱃속에 아기가 있다니.”

   “형이 아기를 가지도록 자기 전에 꼭꼭 기도를 했어.”

 

   히나타가 감회가 새로워서 혼잣말을 하는 순간마다 보쿠토는 이어서 말을 했다.

 

   “혼잣말이거든.”

   “나도 혼잣말이야.”

   “거짓말하시네.”

   “우리 아기가 생겼다니까. 공주님이래.”

   “알고 있어.”

   “그래도 가장 다행인 사실은, 형이 다치지 않아서야. 그래서 병원을 향해 달린 거고. 버텨줘서 고마워요.”

 

 

 

   아이는 신의 축복이라고 불린다. 그 예시로, 남성과 여성 간 결합으로 아기가 생길 확률은 낮다. 아이를 원하는 부부는 임신 확률을 높이려고 가임 기간을 확실히 파악한 후 성관계를 갖지 않는가. 더욱이 그들보다 아이를 가질 확률이 낮은 한 쌍은 바로 남성과 남성 사이이다. 약물의 힘을 빌려 호르몬을 조절해야 하며 자궁이 없기에 몇 차례의 시도를 해야 한다. 히나타와 보쿠토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두 사람이 살아가는 삶도 행복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특성을 똑 빼닮은 아이를 얻으면 보다 더 흥미로운 인생이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의 장벽이 거대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보쿠토 코타로와 히나타 쇼요는 모두 회사원에, 사회 경험이 많은 어른이니까.

 

   그들에게 아이가 생긴 것은 정말이지 감사한 일이었다. 남성 부부라는 한계를 딛고 어려움 속에서 딸이 부부 사이에서 기적같이 생겼다. 보쿠토는 히나타의 임신 가능성을 염두하지 않았고, 단지 쇼요가 고통을 호소하여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마법처럼 어여쁜 딸이 자리했다니 믿기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지.”

   “뭐가 말이야?”

   “아까 말한 것들 모두. 우리의 연애와, 결혼과, 임신이 신기해.”

 

   돌이켜 회상해보면 고등학생 시절에 만나 사귀고, 두 사람 모두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해당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흔치 않다. 군대 2년까지 포함한다면 장장 9년을 연애를 했다는 의미이니 말이다. 게다가 보쿠토와 히나타가 직장을 얻고 안정을 찾은 후 결혼하는 일도 쉽지 않다. 오랜 시간을 사귀면 권태기가 찾아오기 마련인데 두 사람은 서로가 여전히 좋았다.

 

   “그게 뭐가 신기해. 앞으로 더 신기할 일들이 많을 텐데.”

 

   보쿠토는 히나타의 배 위에 귀를 살며시 대었다. 임신 사실을 알기 이전에는 단지 말랑말랑한 촉감이 좋아서 만지작거렸지만, 그 속에 사랑의 결실이 있다고 상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과거에는 꼬르륵 소리가 귀엽기 짝이 없었는데 형이, 내 아이를.

 

   눈을 감고 양수 속 꼬물대는 작은 아이를 상상함과 동시에 귓가에 꼬륵 소리가 울렸다.

 

   “배고파?”

   “아니. 안 배고픈데? 꼬르륵 소리 내 배에서 나는 거 아니거든!”

 

   질책하지 않았지만 히나타는 흥, 칫 등 소리를 연이어 뱉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거든!”

   “내 배가 아니라 우리 애가 배고프다고 하잖아!”

 

   순간 보쿠토는 멈칫했다. 히나타의 배는 히나타의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보쿠토 코타로와 히나타 쇼요의 자손이다. 히나타의 아이가 아니라 ‘우리’ 애라 명명되는 순간 보쿠토는 밀려오는 감동에 눈가가 금세 촉촉해졌다. 형의 아기가 내 아이래. 내 딸이 형의 뱃속에 있어. 보쿠토 코타로 혼자의 아기가 아니라, 히나타 쇼요만의 자식이 아니라. 바로 ‘우리’ 딸이다.

 

   “귤 먹고 싶어. 보쿠토. 귤 사와.”

   “으앙! 쇼요. 히카루우.”

 

   말끝을 질질 끌고 소중한 히나타의 허리를 꼭 끌어안은 코타로는 꼭 애 같았다.

 

   “애가 둘이 되었구나.”

 

 

 

   안타깝게도 히카루는 보쿠토의 성격을 쏙 빼닮았고, 해당 미래를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다. 보쿠토 히카루_히나타 쇼요는 히나타 히카루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이다_가 열 달 후 세상의 빛을 보았을 때, 그녀의 머리칼은 곱슬곱슬한 주홍빛을 띠었으니 말이다. 둥그렇게 허리를 옹송그리고서 손가락을 입에 쪽쪽 빠는 히카루는 마치 작은 히나타의 모습이었다. 딸의 탄생에 감격한 보쿠토를 뒤로 하고, 카게야마와 아카아시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다행이야. 덩치만 큰 애, 보쿠토 코타로를 닮지 않았구나.

 

   하지만 인생은 모두가 바라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히나타는 후에 불어 닥칠 폭풍을 예감하지 못한 채 그저 허리를 붙잡고 엉엉 우는 보쿠토 코타로를 쓰다듬을 뿐이다. 그리고선 애가 애를 낳는구나, 한숨을 폭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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