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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You, Darling

W.우늉(@Narahan_star)​

◈ 오이카와 토오루의 여동생 오이카와 쇼요가 나옵니다. 성별전환 주의해 주세요.

   “쇼, 쇼짜아앙, 으허헝….”

 

   쟤 미친 거 아냐. 왜 이 좋은 날에 울고 있어.

 

   식이 끝나자마자 슬그머니 빠져나가더니 어디서 가져온 건지 포도와 젤리를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고 있던 하나마키가 옆에서 멀뚱멀뚱 서있던 마츠카와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괜히 옆에 서 있다가 벼락을 맞은 마츠카와가 옆구리를 잡고 쓰러졌다.

 

   “이, 씨…, 앗…, 너 왜, 으, 아파.”

 

   좋은 날, 좋은 장소에서 욕을 할 수는 없어 급하게 목 뒤로 삼켰다. 얼마나 쓰던지 삼키는 내내 열이 오르고 목대에 핏줄이 서 꽤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육두문자를 내뱉어 분위기를 망치는 일은 없었다. 어지간이 아팠나 보다. 하나마키가 같이 쪼그려 앉아서 미안한 표정으로, 아프냐?, 라고 물어봐 머리에 핏대가 하나 더 섰다.

 

   운동하는 새끼 손가락이 당연히 아프지. 나 칼로 찌르는 줄 알았어.

 

   마츠카와가 제 친구의 어깨를 꽉 잡으며 웃었다. 아야야야, 아파, 아파, 미안, 미안해! 힝힝 거리면서 금방 엄살을 피워 대니 기분이 좀 나아졌는가 보다. 미간이 좀 풀린 친구의 시선을 애써 앞쪽으로 돌렸다. 하나마키의 그 흉악한 손가락은 신부 쪽 혼주석에 홀로 앉아 울고 있는 오이카와 토오루였다.

 

   천재세터, 국가대표, 미남, 그 외에도 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니지만 오이카와 토오루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단어 세 개였다. 23세의 아주 젊은 배구스타. 미디어에서 가장 많이 보도해주고, 게임마다 가장 많은 팬들이 따라다니는 아주 실력 있는 국가대표 말이다. 인터뷰에서 태연하게 상대편 세터를 밟아버리고 싶다고 하는 오이카와 토오루는 제 3살 어린 동생의 결혼식이 시작되고 나서 신부가 입장하자 혼주석에 홀로 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콧물눈물까지 질질 짜면서.

 

   “흐어어…, 쇼, 흐어엉….”

 

   눈덩이가 이미 잔뜩 부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이내 손수건에 얼굴을 묻고 오열했다. 젊은 남자가 신부 쪽 혼주석에 홀로 앉아 내내 엉엉 울어 대니, 무슨 사연이 있나 사람들이 식이 끝났는데도 신랑 쪽 손님들이 궁금한 표정으로 흘끔흘끔 쳐다본다.

 

   삐뚜름한 표정으로 제 오랜 친구를 쳐다보던 둘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툭, 쏘듯 말하기는 했지만…, 뭐 똑같은 감정은 평생가도 느끼지 못할 거지만 이해는 되었다. 오이카와 토오루가 애지중지 지난 열두 해 동안 키워온 하나뿐인 여동생이 오늘 결혼을 한 것이니까 말이다. 여동생의 유일한 가족이자 보호자는 저뿐이라고, 혼주석에 자신 말고는 아무도 앉을 수 없다고, 앉게 해주지 않는다면 죄송하지만 결혼도 없다고 사돈 앞에서 입술을 꽉 깨물며 말하는 남자였다. 같은 성을 달아 오랜 시간 서로를 지탱해준 가족을 떠나 보내는 것이 어떤 감정일지, 굳이 가서 요리조리 찔렀다가 배구 국가대표의 따귀를 맞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야, 오이카와. 피로연 빨리…, 너 아직도 우냐?”

 

   그리고 그 여동생도 아마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보내지 않았을 거였다. 잔뜩 수그리고 있는 오이카와 토오루의 등을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가볍게 두드렸다. 검은색 하오리에 제대로 하카마를 갖춰 입은 새신랑이었다. 제대로 된 신사에서의 결혼은 아니었지만 토오루의 오랜 소꿉친구와 하나뿐인 여동생은 전통혼례복도 참 곱게 차려 입고 걸어 나왔다. 신랑신부를 위해 식장이 약간 어두워질 때부터 토오루는 엉엉 울고 있었다. 이미 팅팅 불어버린 토오루의 눈을 보고 하지메가 한숨을 쉬었다.

 

   “뭐야! 너 왜 좋은 날에 한숨이나 쉬냐! 너, 너, 너 때문에 쇼요가 불, 불, 아냐, 행복해질 거야…, 흐어엉…, 쇼쨩….”

   “너야말로 울지 마. 쇼요가 너 울고 있는 거 보면 퍽이나 좋아하겠다.”

 

   평소 같으면 등짝이나 팍팍 때리며, 쿠소카와 오늘도 헛소리나 줄창 해댄다고 짜증을 냈겠지만 하지메는 오늘은 참을 작정이었다. 하나뿐인 여동생을 결혼시키는 오빠의 마음을 이해해서일 수도 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에게 드디어 자기 이름을 새겼다는 자만심에서 나온 여유일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메는 오늘 토오루가 아무리 바보짓을 해도 넓은 마음으로 용서를 해줄 아량이 있었다. 육 개월 전부터 준비해온 슈트를 입고도 무릎을 끌어 앉아 여전히 혼주석에 앉아있던 토오루가 제 어깨에 올라온 하지메의 손을 꾹 잡았다. 자기만큼 쇼요를 오랫동안, 그리고 가장, 아니 두 번째로 사랑스럽게 봤을 소꿉친구였다. 이렇게 성인이 되자마자 홀랑 결혼식을 할 줄은 몰랐지만.

 

   눈물자국이 가득한 눈동자가 하지메를 올려 보았다. 오이카와 토오루가 하지메에게 여전히 오이카와일 때 오이카와 쇼요는 언제나 쇼요였다. 오이카와가 두 명이라 싫다고 졸라 대는 아이 때문이었다.

 

   토오루가 잡은 손에 힘이 아플 만큼 꾹 들어갔다. 잔뜩 물이 먹은 눈동자가 새파랗다. 토오루에게 쇼요는 참 아픈 손가락이었다. 아주 어린 나이에 둘만 남겨진 이야기를 하자면 길겠지만, 그 모든 걸 뒤로 하고도 굳이 고집을 부리며 혼주석에 홀로 앉은 토오루는 그 자체로도 둘의 특별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반드시 행복하게 해줘.”

   “손에 물도 안 묻힐 거야.”

 

   쇼요는 피로연에 저와 꼭 닮아 발랄하고 싱그러운 색이 가득 닮긴 칵테일 드레스를 입고 왔고, 하지메는 그 물도 안 묻힐 거라는 쇼요의 두 손에 잔뜩 키스를 퍼부었다.

 

 

 

 

 

   “와, 진짜 손에 물도 안 묻히게 할 줄이야.”

 

   하나마키가 사과를 돌려 깎으면서 허, 하고 웃었다. 마츠카와가 주방에서 호박죽을 끓이다가 말고 나와서 어이없다는 얼굴로 끄덕거렸다.

 

   “그게 우리 손에 대신 묻히게 할 거라는 경고였다는 걸 알았겠냐.”

   “저기, 좀 조용히 해줄래? 우리 쇼쨩이 지금 낮잠을 자는 중이거든…!”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옆에 찰싹 달라 붙어있던 오빠의 품 안으로 쏙 들어가 자기 시작한 쇼요가 오죽이나 안쓰러운가 보다. 해외원정이 끝나자마자 눈치도 없이 제 동생 신혼집으로 달려온 토오루의 입이 벌어졌다. 초인종을 누르자 영원히 어리기만 할 것 같은 여동생은 절뚝거리며 문을 열어줬고, 배는 정말 많이 불러있었고, 반대로 팔다리는 삐쩍 말라 있었다. 맙소사, 오이카와 토오루가 제 생에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소꿉친구의 얼굴에 주먹부터 날린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안 그래도 살이 잘 찌지 않아 걱정을 했는데, 곧 부러질 것 같은 팔이나 다리에 비해 부푼 배는 기이하기까지 했다. 마치 영양분을 모두 아기에게 빼앗기는 꼴이 아닌가. 피곤한 얼굴로 눈을 비비다가 제 오빠의 방문에 환하게 웃는 아이를 끌어안으며 토오루는 결혼 후 또다시 펑펑 울었다.

 

   아니, 그것까지 좋다. 좋다고. 남들 일찍 끝난다는 입덧을 거의 막달까지 하고 있으니 얼마나 제 동생이 눈에 걸리고 마음이 아팠겠는가. 음, 음, 이해하지, 이해해. 근데 우리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는 말이냐. 토오루의 성화에 입을 꾹 다문 하나마키는 사과를 마저 깎기 시작했고 마츠카와는 불퉁한 얼굴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만들던 호박죽을 계속 저어주지 않으면 금방 눌러 붙을 테니까.

 

   뭐, 투정은 부리지만, 그래도 쇼요를 도와주는 것 자체는 두 사람 다 불만은 없었다. 하도 오래, 그리고 토오루의 성화를 봐서 그런가, 쇼요는 제 진짜 여동생보다 더 여동생 느낌이 났다. 어린 게 벌써 결혼해 애를 곧 낳는다니. 애가 애를 낳는다는 느낌도 좀 있고.

 

   마츠카와가 생각 없이 호박죽을 젓고 있을 때, 불편한 표정으로 끙끙 잠을 자던 쇼요의 눈이 반짝 떠졌다. 눈을 비비지도, 그렇다고 근래 무척이나 늘어난 졸음이 묻어 있는 얼굴도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눈을 뜬 쇼요가 일어나려고 바둥거리자 토오루가 깜짝 놀라 어깨와 허리를 받쳐 소파에 제대로 앉을 수 있게 도와줬다.

 

   “쇼쨩,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면 화장실?”

   “하…메….”

   “응?”

 

   쇼요가 비틀거리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속이 메슥거려 잠도 제대로 못 잔다는 쇼요는 현관문 앞으로 다가갔다. 소파 앞의 커피테이블에서 이제 배를 꽃모양으로 깎고 있던 하나마키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들었을 때, 삑삑거리는 도어락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쇼요? 왜 거기 그러고 서있어. 추워.”

 

   새 그림이 그려져 있는 박스와 검은색 장바구니를 들고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왔다. 칼바람에 목도리와 패딩으로 꽁꽁 싸매고 다녀왔는데도 귀와 코가 빨개져 있었다. 여름에 태어나서 그런가, 하지메는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탔다. 얼굴이 붉게 얼어 있는 남편이 퍽이나 마음이 아픈가 보다. 쇼요는 금방 울상을 지으면서 팔을 벌려 하지메에게 다가갔다.

 

   “아, 잠깐만.”

 

   그 자리에서, 팔을 벌린 자세로 그대로 멈춘 쇼요를 두고 하지메는 들고 있던 물건을 내려놓았다. 주섬주섬 찬 기가 들은 목도리와 입고 있던 하얀 패딩을 벗어 마루에 잠시 내려 두고는 신발장 위에 놓아둔 손세정제를 몇 번 펌프해 손까지 깨끗이 씻고 하지메는 그제야 쇼요를 품 가득이 꼭 안아줬다. 배가 아무리 나왔다고 하던 내 품에 여전히 한품이나 남으니 빨리 꼭 안겨줘. 따끈한 몸이 폭, 하고 안기니 마음이 다 뭉근하게 무너져 내렸다.

 

   다만 겹쳐오는 팔이나 다리가 너무 말라 뼈가 다 드러나 있어 하지메가 하염없이 제 신부를 토닥거려 줬을 뿐이다.

 

   “허.”

 

   제 여동생 뒤를 쫄래쫄래 쫓아 나온 토오루가 숨 쉴 새 없이 꼬옥 달라붙어 있는 부부를 보다가 바람 빠지는 소리만 냈다. 하나마키가 과도를 들고 있는 상태로 얼굴을 쏙 내밀고 왔냐, 이와이즈미, 라고 뒤에서 소리쳤다.

 

   “어. 와 있었냐.”

   “나도 있었는데….”

 

   토오루가 입술을 비죽거리자 하지메 품에 안겨있던 쇼요만 히, 하고 웃었다. 아무렴 어떨까, 하지메는 쇼요의 허리를 잘 받쳐주고 다른 손으로는 장바구니를 들었다. 그제야 입술만 비죽이는 토오루를 보다가 새 그림이 그려진 상자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얼굴 봤으니까 온 거 알아. 저기 저 상자나 가져다가 놔.”

 

   이씨, 내가 심부름꾼이냐! 노발대발 팔을 붕붕 흔드는 꼴이 어째 십년 전이나 오늘이나 변하게 없는 건지. 쇼요가 좋아하는 집에서 고로케 사왔는데 그럼 저기서 계속 식게 놔두던지. 토오루는 대번에 조용해져서 얌전히 고로케 박스를 가지고 거실로 따라 들어갔다.

 

   하지메는 배구공이 그려진 담요와 고질라 그림이 잔뜩 그려진 담요가 뭉쳐져 있는 소파에 쇼요를 앉혔다. 여름에 너무 더워해 머리를 짧게 잘랐는데 겨울에 들어서도 자꾸 식은땀이 나서 앞머리만 하지메가 집에서 잘라주었다. 뭐, 퍽 손재주가 있는 편이 아니라 거절을 했더니 앞머리만 자르는데 미용실을 가는 건 좀 그렇다고 쇼요가 졸라 대 결국 하지메가 가위를 들고 벌벌 떠는 손으로 잘라줬다. 결과적으로는 쥐 파먹은 듯이 듬성듬성 잘렸지만 하지메는 그것마저 귀여웠다. 소파에 앉히고 살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살그머니 머리를 기대온다.

 

   히히, 웃는 얼굴이 퍽이나 피곤하고 말라보여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배는?”

   “괜찮아요. 속도 안 미식거리고, 또 잠도 많이 잤어요!”

 

   토오루가 신나서 접시와 포크를 챙겨오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게 무슨 소리더냐. 아까 잘 대도 잔뜩 불편한 표정으로 잠이 들었고, 그 전에는 속이 아파서 토오루가 사온 덮밥은 깨작거리다가 곧 숟가락을 놨었다. 그 전에 체구에 맞지 않게 엄청난 소화량을 자랑하던 쇼요의 식사량과 비교하면 왜 주변사람들이 유난히 안절부절 못하는지 견적이 대량 나왔다. 복스럽게 먹는 게 좋다던 쇼요의 고등학교 선배는 쇼요의 이른 입덧이 시작되자마자 전국으로 맛집을 찾아서 떠나기 시작했다. 저번 주에 한국으로 출장을 갔다가 곶감을 사가지고 와 쇼요가 잘 먹자 이번 주에 억지로 출장을 끼워 놓은 선배는 어제 비행기를 탄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쇼쨩 아까도 잘 못 자고 끙끙거리던데. 그리고 점심에 가츠동 사왔는데 거의 다 남겼잖아.”

 

   왜 거짓말 해, 쇼쨩. 제 오빠의 눈치 없음은 하늘을 찌르는 지라, 쇼요가 아무리 부리부리 눈을 치켜 뜨고 온갖 눈짓을 해봐도 동그랗게 눈을 뜨고 줄줄 제 소꿉친구에게 일러바치는 꼴이란! 그냥 진실을 말한 것뿐인데, 졸지에 일러바치는 고자질쟁이나 된 토오루는 억울했겠지만 쇼요는 곧 자신을 돌아보는 하지메의 얼굴에 부리부리 눈을 치켜 뜨다 말고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하지메 상, 하지메 상, 쇼요 말을 믿을 거야, 아니면 토오루 말 믿을 거야?”

   “오빠라고 제대로 불러줄래, 쇼쨩!”

 

   토오루가 발끈했다.

 

   쇼요의 입덧은 음식을 가리는 입덧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먹고 싶은 음식이 하염없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었고. 다만 쇼요는 그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던 임신 전과 비교해 극히 적게 먹을 뿐이었다. 하루하루 말라가는 게 눈에 보이는데 겨우 먹는 거라고는 사과 몇 알, 두부 몇 조각, 무침 몇 젓가락, 생선종류는 비린내가 난다고 학을 뗐다. 당황해서 환장하는 건 쇼요의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오이카와 쇼요의 기나긴 짝사랑 끝에 맺어진 커플은 쇼요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마치 쫓기듯 결혼식을 올렸다. 물론 당연하게도 쇼요의 고집이었다. 너무 이르지 않냐 눈물바람으로 달려온 오빠를 냅다 던져버리더니 어서 나와 결혼해주지 않는다면 애써 들어간 대학교고 뭐고 다 그만두겠다고 떼를 썼다. 대학진학 대신 일을 시작한 하지메는 뒤에서 안 할 거지, 안 할 거지!, 소리를 지르고 있는 토오루를 시끄럽다고 냅다 던지고는 하지메는 결혼은 자금을 조금 더 모은 뒤에 하는 게 어떻냐고 물어봤다. 쇼요는 거절했고, 결국 그녀의 고집대로 결혼식은 졸업한 그 해 치러졌다. 그리고 쇼요가 대학을 채 졸업하기 전에 임신을 했다.

 

   이와이즈미들도, 토오루도, 쇼요의 선후배, 하지메의 결혼사실을 알고 있던 회사 동기들도 당연히 난리가 났다. 매일 사람들이 방문하는 난장판 속에 쇼요와 하지메만 침착했다. 당사자들이 침착하니 주변사람들도 나란히 침착해지며 시간이 지나자 납득을 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잖아, 뭔가 뜻이 있겠지, 뭔가 예정이 있겠지, 뭐, 없어도 잘 하겠지. 스무 해 넘게 쌓아 놓은 신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하지메가 완벽하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쇼요와의 교제는 하지메의 여러 부분을 약하게, 또 강하게 만들었다. 요리도 참 지지리도 못했다. 뭐,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에만 전념하던 고등학생이 집안일이나 요리에 대해 얼마나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는 좀 회의적이지만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특히나 손에 꼽혔다. 단순히 요리에 대해 잘 알거나 하는 지식의 문제는 아니었고, 손의 문제 같았다. 고등학생 시절 배구를 할 때에도 합숙만 가면 식사당번에서 쏙 빠졌다. 누구는 불공평하다 불평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합숙까지 가서 배는 곪고 싶지 않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설거지나 잡일을 대신 하는 건 하지메였다. 노동의 양은 같거나 더 많아도, 하지메는 그것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저도 안전하고 적당히 맛이 나는 음식을 먹고 싶었던 까닥이었다. 누가 그랬는데, 사랑은 우주를 구한다고. 존나 맞는 말이었다.

 

   쇼요와의 결혼은 하지메의 손끝을 바꿨다. 평생 가보지도 않던 요리교실을 자진해서 다녔던 것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이었다. 빌어먹을 친구들에게 온갖 비웃음을 당하고, 또 손가락을 거의 다지듯이 썰고 있는 것도 감수했다. 쇼요에 대한 사랑은 하지메의 손끝을 구했다. 결혼식을 올릴 때쯤 먹을 만한 것을 만들어내더니 이내 쇼요가 학교를 갈 때 도시락도 챙겨 주기 시작했다. 임신 초기쯤 되니 웬만한 음식은 만들 수 있게 됐다는 소리다.

 

   하지메는 젖어 있는 앞머리를 쓰다듬었다. 자는데 웬 식은땀을 그리 흘리는지. 짧은 앞머리가 온통 젖어 있었다.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되면 잔뜩 불쌍한 척을 하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하지메는 허리를 숙여 그 미지근한 이마에 뽀뽀를 했다.

 

   “닭죽 해주려고 재료 사왔어. 오늘 푹 끓이면 있다가 새벽에 먹을 수 있을 거야.”

   “아, 나 닭죽 먹고 싶은 거 어떻게 알았어요?”

   “어제 밤에 닭죽 먹고 싶다고 자다가 끙끙거렸거든.”

 

   쇼요의 입이 비죽, 나왔다. 제 오빠랑 비슷했지만 저건 부끄럽다의 비죽이었다. 물론, 하지메는 전혀 제 쇼요와 토오루를 비교할 생각이 없었다. 귓불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귀여웠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메는 이내 쇼요에게 떨어져 장바구니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호박죽 냄새가 가득했다.

 

   “다 끓였어?”

   “음…얼추. 네가 적어 놓은 대로 하긴 했는데 잘 모르겠네. 맛 좀 봐주라.”

   “아, 잠깐만.”

 

   마츠카와가 불을 완전히 꺼버렸다. 하지메는 주방의 싱크대에서 손을 한 번 더 씻었다. 익숙하게 멘 앞치마는 샛노란 색에 귀여운 병아리가 잔뜩 그려져 있었는데, 원래 쇼요가 요리를 해보겠다고 당차게 산 건데 결국 그가 쓸 일은 없었다. 덩그러니 먼지만 쌓이던 병아리 앞치마를 구제해 준 건 역시 하지메였다. 사이즈가 맞지 않아 그냥 걸치고 가볍게 끊을 묵는 정도였지만 어느 정도 이물질이나 기름에서 하지메의 옷을 톡톡히 구해주고 있었다.

 

   묵직한 장바구니에서는 여러 재료가 굴러 나왔다. 닭죽을 하겠다며 재료를 사러 나갔다 왔으니 생닭이 나온 건 당연했지만 유부와 소시지, 김 같은 것도 같이 굴러 나오니 마츠카와의 눈이 동그래진다.

  “웬 거야?”

   서랍 안쪽에서 작은 칼을 꺼냈다. 잘 갈아 둬 날이 반짝거리는 게 좀 무서웠다.

 

   “쇼요가 집에서 많이 답답해 하길래. 내일 쇼요랑 바람 좀 쐬려고.”

   “도시락 싸게? 근데 날이 추운데 치비 데리고 나가도 돼?”

   “드라이브만 하고 따듯한 곳에서 밥만 먹을 거니까. 나도 감기 걸릴까봐 별로 데려가고 싶지 않은데, 그렇다고 애를 집에만 가둬 둘 수는 없잖아.”

 

   쇼요는 무슨 죄야. 뼈를 발라내기 시작한 하지메는 말이 없어졌다. 집중하는 친구를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마츠카와는 굳이 옆에서 알짱거렸다.

 

   “근데, 치비 몸도 무겁고, 화장실도 많이 가잖아. 나갔다가…, 무슨 일 나면….”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았고, 그걸 입으로 뱉고 싶지 않아서 마츠카와는 입을 우물거렸다. 걱정은 됐지만 이런 말을 입으로 내뱉는 건 또 기분이 다르다고. 안 그래도 거의 막달이라 배는 나올 대로 나왔지, 그 가는 다리로 제대로 걸을 수나 있을지 걱정이었다. 날이 많이 풀리긴 했지만 여전히 추웠다.

 

   하지메는 묵묵히 뼈를 발라냈다. 작지만 날카로운 칼이 이리저리 헤집었다. 마츠카와는 그릇에 호박죽을 펐다. 사람이 다섯이니 그릇도 다섯 개. 운동선수 셋과 전직 운동선수 한 명이니 한 그릇 가지고는 턱없이 모자라겠지만 아무튼 한 상에 앉을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뼈와 껍질을 깨끗하게 분리한 하지메가 고개를 들고 마츠카와를 쳐다보았다.

 

   “내가 있으니까 쇼요는 괜찮아.”

 

   화가 난 얼굴이나 어조는 아니었다. 마츠카와는 눈을 슬쩍 굴려 마주치는 걸 피했다.

 

   하지메 상, 나 대추 싫어요오! 거실에서 신나게 사과를 집어먹던 쇼요가 불현듯 소리를 질렀다. 대추 특유의 향이 싫다고 학을 떼던 사람이다. 장바구니에는 대추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칼을 싱크에 집어넣고 손을 씻으며 거실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얼굴 볼이 쑥 내려 안쓰러웠지만, 눈이 마주치자 그 여전한 눈꼬리가 팔랑팔랑 접힌다. 너는 바라만 봐도 예쁘구나. 하지메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대추 안 넣어. 사과는 어때?”

 

   쇼요가 헤죽 웃었다.

 

   “맛있어요!”

 

 

   소풍도시락은 보기만 해도 설레는 감정이 생긴다. 사자가 그려진 노란 도시락 보자기로 감싼 도시락을 박스에 잘 넣어 트렁크에 실었다. 유부를 감싼 새콤한 초밥과 여러가지 재료가 들어있는 오니기리, 문어모양을 낸 소시지, 치즈를 가득 뿌린 미트볼, 바싹 기름에 들어갔다 나온 두부튀김, 청경채와 샐러리가 가득 들어가 있는 야채볶음, 새우튀김은 어떻게 될지 몰라서 딱 두 개만 넣었다. 과일은 사과와 배, 토마토, 브로콜리, 얼려 두었던 오렌지와 딸기, 그리고 블루베리를 잘 넣어두었다. 멜론이 있었다면 좋았을 걸. 따듯한 보리차를 보온병에 넣어 쇼요에게 건네주며 하지메가 생각했다.

 

   “쇼요, 가다가 고기만두랑 호떡 사갈까?”

 

   잔뜩 두터운 방석과 담요를 조수석에 챙겨 놓으니 깔깔거리며 그곳으로 뛰어든 쇼요가 고개를 번쩍 든다. 외출이라고 신이 나서 아침부터 썬크림까지 야무지게 발랐다. 너무 많이 발라 얼굴이 하얗게 번져 결국 수건으로 좀 닦아내는 일도 있었지만 오랜만의 외출에 잔뜩 신이 난 쇼요를 막을 수는 없었다. 고기만두요?

 

   “네!”

 

   만두 너무 좋아! 신이 나 조수석에 앉아 팔을 붕붕 흔들어 대는 걸 보니 집안에서 얼마나 답답해 했을지.

 

   “좋아. 그럼 고기만두 사가지고 바다로 가자. 대신 차에서 내리지는 않을 거야.”

 

   날이 다행히 춥지 않았다. 이잉, 우는 소리를 해봤자 바다는 바람이 부니까 안 돼. 출발하기 전에 옆에서 웅얼거리며 불평하는 쇼요의 입에 키스하는 걸로 불평을 틀어막았다.

 

 

   사귀기 시작한 지 일 년이 지났나, 하나마키가 말하길, 솔직히 오이카와 쇼요와 그렇게 잘 사귈 줄 몰랐다더라. 마츠카와도 그 소리를 했고, 하지메와 쇼요의 관계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볼 때마다 빠지지 않고 똑같은 소리를 해서 진지하게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냐고 하나마키에게 말을 한 날이었다.

 

   “너 진짜 남자답잖아.”

   “?”

 

   이게 무슨 헛소리야. 옆에서 공을 올려주던 하지메의 얼굴이 담담하게 찌그러졌다. 상담을 하러 왔더니 알 수 없는 소리만 한다. 하나마키가 스파이크 치려던 공을 통, 통, 바닥으로 몇 번 치댔다.

 

   “운동하는 남자애, 진짜 단어조합마저 너무 삭막하지 않냐? 솔직히 넌 여자애들한테 잘 하는 이미지는 아니지.”

   “허.”

 

   하지메가 손을 슥 올렸다. 과연, 이름에 바위() 자가 들어가는 남자답게 참 단단해 보이는 주먹이었다. 고등학생때 맞아 본 결과로 말하자면, 아무래도 좋으니까 다시는 맞고 싶지 않았다.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애써 친구에게 한발자국 멀어진 하나마키가 목을 큼큼거리며 풀었다. 튕기던 볼도 제 옆구리에 잘 꿰었다.

 

   “근데 막상 쇼요한테 하는 거 보니까 납득이 가는 거야.”

 

   그러더니 불현듯 손가락으로 제 머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내 머리 어때?”

 

   하나마키는 원래 머리색이 아주 옅었는데 근래에 무슨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이돌 마냥 벚꽃 색으로 염색했다. 실업팀 감독은 무슨 일이 있냐며 면담을 요청했고, 동료들도 깔깔거리며 웃었다. 작지만 배구잡지에 뉴스도 한번 실렸던 적이 있었다.

 

   하지메가 눈썹을 찡그렸다. 머리카락 뭐 말이냐?

 

   “땀에 젖어 있는데.”

 

   방금까지 몇 번이고 뛰었으니 땀이 흘러 젖은 건 당연했다. 푸핫, 하나마키가 허리를 숙이며 웃었다. 염색을 하고 오늘 처음 하지메를 만난 거다. 잡지를 볼 시간이 없을 테니 남자는 오늘 염색을 한 하나마키를 처음 본 게 맞았다. 인사도 그냥 고등학교 때와 별다를 바 없었다. 여, 오랜만이다. 계속 얼굴을 부딪치며 살다가 일주일정도 여행을 갔다 온 사람 같았다.

 

   “그렇다니까. 이래서 납득이 갔다고.”

   “뭐가.”

   하지메가 인상을 찌푸렸다. 연습 끝났으면 스트레칭을 하라고 공을 던져서 꺄아악, 비명을 지르며 하나마키가 도망갔다.

   “아씨, 좋은 말이라고!”

   “주말에 일부러 시간 내서 왔더니.”

   끼고 있던 배구공을 담는 캐리어에서 공을 두 개 꺼내자 하나마키가 바짝 엎드렸다. 키는 같이 다니던 사인방 중에서 제일 작아 놀림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순수하게 힘만 볼 때는 제일 강했다. 딱히 배구 말고는 다른 운동을 하지 않은 나머지 세 사람과 달리 하지메는 운동회나 축제 때 빠지지 않고 불려 나갔다. 운동센스도 있고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 성미이니 의외로 발이 넓다. 상냥하게 말하는 법은 없었으나 배려하지 않은 적은 없고, 이목을 끄는 화려함은 없었지만 묵묵히 자기 할 일을 불평 없이 했다. 사람의 외모를 보고 가려보지 않았고, 그 고전적인 성격과 다르게 편견도 없었다. 고등학생 때도 발렌타인 데이에 제일 빛나는 오이카와 토오루를 제외한다면 아마 우정초코도, 진심초코도 아마 가장 많이 받았을 거다.

   제 이 화려한 머리를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는 하지메는 예나 지금이나 너무 변한 게 없어서. 쇼요가 하지메를 향한 짝사랑을 몰래 고백해 왔을 때도 오늘처럼 납득했었다. 토오루가 쇼요의 연애에 관해 징징 짰던 건 하지메가 싫어서가 아니다. 걘 그냥 징징거렸던 거라고. 제 소꿉친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토오루다. 제 아픈 손가락이 연애를 시작한다고 하니 새삼스런 감정이 들었겠지만, 아마 쌍수를 들고 환영한 것이 먼저였을 거다. 둘의 연애가 순조로운 건 사실 토오루나 하나마키, 마츠카와 정도로 가깝게 지켜보면 누구나 납득할 수 있었고, 잘 사귀고 있다고 말한 건….

   하지메의 전화기가 울렸다. 코트 밖, 구석에 놔뒀는데도 벨소리를 크게 해서 그런지 아주 잘 들렸다. 연애 전만 해도 전화기는 진짜 충전을 너무 해놓지 않거나, 자주 체크하지 않아서 답답하다고 토오루가 오죽이나 찔러 댔는데. 역시 사랑은 우주를 구한다. 하지메는 펄쩍 뛰어 순식간에 코트 밖으로 넘어가 전화를 받았다.

 

   “아…, 응. 지금 하나마키랑. 끝났어? 아니…, 나도 끝났어. 응, 거기 잠깐 있어. 더우니까 밖으로 나가지 마. 응.”

   바닥에 놔뒀던 차키와 지갑도 챙겼다. 뭐야, 지금 가면 나 혼자 체육관 정리해야 하는데. 차마 청소 같이 하자고 할 수는 없어서 눈짓으로 인사하는 하지메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진짜 잘 사귀고 있어서, 저렇게 잘 사귀고 있는 애들은 처음 본다는 뜻이었는데. 하나마키는 피식 웃었지만, 좀 광활한 체육관을 보자 아연해졌다.

 

 

   “아, 그때 하나마키 상이 청소 도와줘서 고맙다고 라멘 사줬는데.”

 

   쇼요가 입을 다셨다. 운전을 하다가 여름 이야기가 나왔고, 해바라기 이야기가 나왔다가, 이내 여름에 하나마키의 체육관에 가서 청소를 한 이야기가 나왔다. 여름농장에서 재배한 해바라기를 가지고 가 한 아름 안겨주니 하나마키가 무척이나 좋아했다. 솜사탕 같은 머리카락과 아주 잘 어울려 예쁘다고 하니 활짝 웃으며 볼에 뽀뽀를 해줬더랜다. 남의 애인한테 무슨 짓이냐고 하지메에게 걷어차이긴 했지만.

 

   “하나마키 상 무-지 귀여웠는데.”

 

   근데 하지메 상이 너무 세게 걷어차서 멍들었다고 그랬어요. 하나마키 상 그 다다음날에 시합도 있었다고요. 엄한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치켜 올려봐도 하지메는 반성하는 법이 없다. 왜냐면 그의 잘못이 아니었으니까.

 

   “남의 애인의 볼에 입술을 대는 게 나쁜 거 아니야?”

 

   오, 타당한 말이었다.

 

   “하나마키 상은 남이 아니잖아요.”

 

   초등학생이었나, 중학생 때부터 본 오빠의 오랜 친구들이었다. 글쎄, 외간 남자라기보다는 친척 오빠들 같은 느낌이었다. 차는 고속도를 벗어나 한참이나 더 달려서야 겨울바다에 도착했는데 비와 눈이 섞여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날씨가 의외로 따듯했지만 사람은 없었고, 겨우 편의점 하나만 불이 들어와 있었다. 바다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차를 대고 브레이크를 걸고 나서야 하지메는 조수석에 앉아있는 쇼요로 시선을 온전히 돌릴 수 있었다. 쇼요는 조금 오랜 드라이브에 지친 표정이었다. 내리고 싶어하지만 졸린지 꾸벅꾸벅 고개가 까딱거렸다. 보리차나 주전부리를 오면서 먹이긴 했지만 오늘은 유난히 입맛이 없는지 깨작거리다가 온전히 제 입으로 들어왔다. 꾸벅, 쇼요의 머리가 완전히 아래로 숙여졌다.

 

   아, 목 아프겠다. 좌석 좀 내려 줘야지. 하지메는 안전벨트를 풀고 몸을 숙여 쇼요의 안전벨트를 끌렀다. 목을 조심스럽게 넘겨주고, 의자를 넘겨주려고 좀더 숙였을 때였다.

 

   툭, 하고 배에 올려 둔 손이 옆으로 떨어졌다.

 

   “…쇼요?”

 

   뭔가 이상함을 느낀 하지메가 조심스럽게 쇼요를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색색거리는 숨소리는 아주 작았지만 빨랐다. 의자를 내리는 레버에서 손을 뗀 하지메가 쇼요의 코 밑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가 떨어진 손을 주물럭거렸다. 손이 차가웠다. 덜덜 떨리는 묵직한 손이 담요를 걷어 쇼요의 가랑이 사이를 만졌다. 축축했다.

 

   허억. 손을 보니 피는 아니었다. 급하게 숨을 들이키고는 하지메는 침착하게 안전벨트를 다시 채웠다. 키를 찾느라 몇 번 헛손질을 하고 나서야 아직 시동이 걸린 상태라는 걸 겨우 알아챘다. 일단, 일단, 출발하자. 사이드 브레이크를 겨우 풀었다.

 

 

   “오, 하지메 상이랑 똑같이 생겼어.”

 

   결국 수술을 했다. 체중이 너무 적게 나가서 미루고 미뤄서 겨우 결정됐지만 마취에 깨어나지 못하고 헤롱대더니 겨우 이틀 만에 또렷하게 정신을 차렸다. 수술을 하는 통에 침대에서 한참을 움직이지도 못했다. 체력이 너무 떨어져 밥도 제대로 못 먹는 꼴을 보며 그 하지메의 눈시울이 툭 터져, 어린 신부 앞에서 울어버렸다. 더 살이 빠질 곳이 어디 있다고, 불러왔던 배도 푹 꺼지니 정말 곧 죽을 것처럼 연약해 보여 하지메는 다시는 애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태어난 아이는 여자애였는데 정신을 차린 쇼요가 비몽사몽 보고 난 후 처음 뱉은 말이 저거였다. 하지메 상이랑 똑같이 생겼어.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이와이즈미 하지메를 쏙 빼 닮은. 빳빳한 직모의 머리카락도, 비죽이 올라간 사나운 눈매도, 앙증맞은 코도, 살짝 올라간 입꼬리도, 자는데도 꾸와악 쥐고 있는 주먹도 그랬다. 멍, 하게 그 앙증맞은 코를 살짝 눌렀더니 울지도 않고 웅얼거린다. 하지메는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망할카와, 아니, 쇼요가 오이카와라 이 말은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었다. 멍청오루가 하던 그 여자에게 인기 없다는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적은 없었으나 대상이 대상인 만큼 신경이 쓰였다. 어엿한 오이카와의 성을 달고 있었던 쇼요 아니던가.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지만 남매이니까. 고등학생때 유난히 토오루가 못생겼다 말을 할 때마다 화를 냈던 건 늦은 사춘기가 와서가 아니라 친한 여동생 같았던 아이의 눈길이 동경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서였다.

 

   뭐, 아이는 죄가 없지만, 하지메를 닮아 새삼스럽게 못생겼다 생각한다면 할 말이 없었다. 쇼요는 죄가 없으니, 자기 죄다.

 

   통증에 식은땀에 흠뻑 젖은 멍한 얼굴에 표정이 이내 꽃같이 피었다. 활짝. 해바라기를 닮은 웃음.

 

   “귀엽다.”

 

   접히는 눈꼬리에 땀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 이틀 내내 정신을 못 차리다 겨우 일어났는데 아파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으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수술실에 들어갔다 나오는 쇼요가 침대에 축 늘어져 있을 때 울었던 하지메의 볼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쇼요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른다.

 

   “하지메 상! 울어요?”

 

   쇼요가 아기를 얌전히 옆에 뉘였다. 어설픈 손길에도 울지 않고 잘도 자는 게 참 순했다. 반쯤 세워진 침대에 적당히 기대 앉아있던 쇼요가 끙끙거리며 제대로 일어나려고 하길래 하지메가 벌떡 일어나 어깨를 가볍게 눌렀다. 가녀린 어깨는 저항도 없이 톡, 하고 밀린다.

 

   “우…, 하지, 메 상?”

 

   수술한 부분은 가벼운 떨림에도 아팠다. 톡하고 침대에 부딪히니 그것조차 아파서 끙끙대니 몸 위로 그림자가 졌다.

 

   “쇼요….”

 

   질끈 감았던 눈을 뜨니 위에 그림자가 졌다.

 

   “왜 울어요?”

 

   하지메는 쇼요가 임신한 내내 쇼요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를 처음 안 순간부터 지금까지 하지메가 쇼요를 실망시키거나, 슬프게 한 일은 없었다. 아, 너무 어리다고 사귀어 주지 않았을 때를 빼면. 어릴 때는 쇼요의 최고의 오빠였고, 연애를 할 때는 최고의 남자친구였고, 결혼을 하니 이제 최고의 남편이었다. 이리 억울하고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울 일이 전혀 없는. 쇼요가 임신 내내 제대로 먹지 못하는 건 하지메의 탓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였다. 임신 전에도 같았다. 딱히 쇼요가 임신을 했다고 행동이 달라질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그 전보다 더 조심해야 하고, 또 더 필요한 게 있으니 그에 맞춰 움직였을 뿐이다. 항상 똑같았다는 거 알고 있었다.

 

   항상 날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행동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울상을 지을 이유가 전혀 없는 거다. 목소리는 잔뜩 갈라져서 뚝뚝 끊겼다. 이틀 내내 자기도 훌쩍 말라 있었다. 밥은 먹었나. 병원에 붙어 있으려고 겨우 목욕만 한 것 같았다. 링거가 달린 팔을 올려 마른 입술을 건드리려고 하자 손을 잡아왔다. 피, 역류, 한다고. 훌쩍거리는 코가 빨갰다. 눈도. 잔뜩 부어터진 눈두덩이와 잔뜩 불어터진 볼도.

 

   아, 하지메 상 코 빨개진 거 귀여워. 잔뜩 찡그린 얼굴이 자기가 좋아하는 공룡 캐릭터를 닮아 있었다. 오이카와 토오루가 못생겼다고 놀릴 때마다 속으로 좋아했다. 그래, 더해라, 더해. 하지메 상은 내 거니까 남들에게 어떻게 봐도 좋아. 인기가 없으면 더 좋아. 물론 하지메는 인기가 많았다. 제 눈에 어여쁜 게 남의 눈에도 당연히 어여쁜 것이라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진짜 귀여워. 고등학생 때 마지막 시합에서 전국출전이 무산되고 난 후 끅끅 거리며 우는 하지메를 관중석에서 보고 나서 조급함이 마음을 뒤덮었다. 빨리, 빨리 내 걸로 만들어야 해.

 

   “키스해줘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동자가 시선을 맞춰왔다. 어린애를 졸업하자마자 홀랑 데려간다고 하지메는 욕도 정말 많이 먹었다.

 

   빨리 키스해줘요.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메는 너무 착했고, 쇼요는 너무 욕심쟁이다. 천천히 상체가 내려왔다. 눈물로 덮인 입술에서 짠맛이 났다. 아무튼 내 거가 짱이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X 히나타 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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